백악관 고문 “낙태·민주주의 위기론, 중도 성향 유권자에 와닿아”
트럼프당으로 변한 공화당 자충수…‘극우 마가’ 프레임에 몰려
정치력 재확인 바이든, 재선 동력 획득…주지사選 민주 선전도 긍정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존 페터만 후보가 접전 끝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강력 지원을 받은 공화당 소속 메메트 오즈 후보를 꺾은 가운데,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페터만 후보 선거운동본부에 모인 지지자들이 승리를 만끽하며 환호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 중도층 표심이 ‘레드 웨이브(공화당 상·하원 석권)’에 휩쓸려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 문턱까지 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살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장하는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논리로 무장한 후보들로 가득 찬 공화당이 미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빠뜨릴 것이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주장에 중도층이 귀를 기울이면서다.
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 불리는 중간선거가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치러졌음에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달성한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민주당 내부와 미국인들에게 재확인시킴으로써 재선 도전을 위한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와 미 CNN 방송 등 주요 미 언론들은 민주당이 예상 밖의 선전을 기록한 데는 각종 여론조사와 정치 전문가들이 간과했던 ‘민주주의 위기론’의 파괴력 덕분이란 분석을 일제히 내놓았다.
민주당이 과거 집권당이 경험했던 대패를 피한 데는 ‘낙태권’ 이슈가 큰 역할을 했다. 미 CNN·NBC·ABC·CBS 방송이 에디슨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출구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인플레이션(31%)’에 비견될 정도로 ‘낙태권(27%)’이 표심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8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소속 존 페터만 후보가 9일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유튜브 'ABC News' 체널 캡처] |
특히, CNN은 상원 초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州)에선 표심 결정 요인의 1위가 인플레이션이 아닌 낙태권이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실제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선 존 페터만 민주당 후보가 접전 끝에 승리했다.
니라 탠던 백악관 선임고문은 “낙태권 이슈를 비롯해 ‘극우 마가’로부터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 주장한 민주당의 주장이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와닿았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나선 것이 오히려 공화당에는 자충수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300명 이상의 후보자를 지지하며 천문학적인 정치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이 ‘트럼프당’이 됐다는 평가가 미국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정적(政敵)을 쳐내고 그 자리에 ‘충성파 후보’들을 대거 앉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민주당이 공화당 후보들을 ‘마가 극단주의자’ 프레임에 몰아넣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고, 이것이 최종 선거 결과를 뒤흔들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튜브 'WPTV News - FL Palm Beaches and Treasure Coast' 채널 캡처] |
가령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한 메메트 오즈 상원 후보가 개표 내내 한 번도 리드를 하지 못하고 3%포인트 정도의 차로 패배했다. 또 미식축구 스타 출신의 조지아주 허셜 워커 상원 후보도 트럼프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들의 자질 문제를 이유로 선거 전부터 상원 선거가 쉽지 않다고 전망하기도 했는데, 이런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 등 ‘마가’에 기대지 않은 공화당 후보들이 중도층 표심을 끌어온 것도 ‘트럼프 책임론’에 불을 붙이는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이 밖에도 소셜미디어(SNS)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선거 전날 공화당을 찍으라고 주장한 것도 민주당 지지층의 위기감을 자극,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민주당 대패가 예견됐던 하원에서 격차를 최소화하고, 상원에서 ‘무승부’를 이끈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재선 도전에 보다 과감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중간선거 관련 기자회견에서 답변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유튜브 'Wall Street Journal' 채널 캡처] |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재선하려 했다”며 내년 초 재선 도전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구 획정 등에 영향을 미쳐 사실상 대선 ‘룰메이킹’ 역할을 하는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기존 대비 2석을 탈환하며 선전한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다. 주지사들이 각 주에서 낙태권과 성소수자 권리 문제, 총기 제한, 이민 정책 등 민감한 이슈를 주도한다는 점도 민주당에 유리한 여론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