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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법의 잣대로

문재인 정권의 대북 안보 라인을 책임졌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가속된 모양새다. 2020년 9월 서해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돼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공무원 이모 씨가 문재인 정부가 내린 결론처럼 자진 월북한 것인지, 아니면 검찰 주장처럼 서훈 실장 등이 첩보 등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월북을 조작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서훈 실장 등 관련자들이 기소될 것이므로 재판을 통해 실체 진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 직전 정권에 대한 수사는 늘 있었다. 가장 수사가 심했던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에 진행된 적폐 수사였다. 전직 대통령 등 수십명이 구속됐고, 수사를 받다가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여러 명이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진행되는 검찰수사가 낯설지 않는다.

검사는 특수한 지위에 있는 공무원이다. 법무부에 소속됐기에 국가의 행정 목적을 위해 일해야지만 검사의 권한 자체가 일정한 범죄 수사와 기소 및 공소 유지 그리고 재판 집행까지 포괄하므로 사법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특히 검사의 불기소 처분으로 대부분 형사 사건이 종결되므로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마치 법원 판결과 유사하게 작용한다. 형사소송법 교과서에서 사법권독립의 정신은 검사에게도 요구되며 검사의 성격을 준사법기관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현재 검찰의 가장 큰 딜레마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일 것이다. 지난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귀국한 투자자문사 임원 A씨가 최근 구속됐기에 또다시 김 여사에 대한 수사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A씨는 김 여사 명의의 주식 수량 등이 담긴, 이른바 ‘김건희 엑셀파일’ 작성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자금을 댔다는 ‘전주’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여사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권 전 회장 등 재판 과정에서 김 여사는 여러 차례 언급됐다. 피고인인 주가 조작 ‘선수’가 권 전 회장을 통해 김 여사를 소개받았다며 김 여사 명의의 증권 계좌 주문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증언했고,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주식 거래를 지시하는 듯한 녹취록도 공개됐다. 지난 2일 열린 재판에서는 주가 조작 의혹을 받는 이들끼리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김 여사 명의 계좌의 주식 거래 내용이 공개됐다. 김 여사가 ‘전주’ 역할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소한 김 여사 명의 증권 계좌가 관련된 것만은 사실이다.

권 전 회장 등 관련자들이 구속된 후 1년 이상 진행된 재판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건대 아마도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김건희 엑셀파일’도 그 당시 검찰이 압수한 증거물이다. 검찰은 주가 조작과 관련된 증거물과 관련자의 진술은 이미 확보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애초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이전 수사팀은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았다.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망각한 무책임한 자세였다. 늦었지만 현 수사팀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선택지는 간단하다. 혐의가 없으면 불기소 처분을 하든지, 소명이 필요하면 서면조사를 하든지, 대면조사가 필요하면 소환 통보하든지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하면 된다.

검찰의 지난 정권에 대한 수사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에도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김수현 전 사회수석비서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직전 정권 누구라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의 잣대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교과서에 기재된 ‘준사법기관’의 정신을 검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검찰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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