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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167년 ‘금융명가’ CS의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가 파산 직전까지 갔던 경쟁사 크레디트스위스(CS)를 32억달러(약 4조2400억원)에 최종 인수했다. 167년 전통의 ‘금융명가’로 이름이 높았던 CS가 시가총액의 3분의 1 수준에서 헐값 매각된 것이다.

CS는 총자산이 5300억스위스프랑(약 750조원), 직원 수는 5만여명에 달하는 세계 9대 투자은행이다. 파산한다면 ‘리먼 모멘트(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망령을 부를 뻔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최대 1000억스위스프랑(약 141조원) 유동성을 지원하며 양사의 합병을 독려한 것은 이 같은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다. UBS의 CS 인수에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의 금융당국이 일제히 환영 의사를 표한 것도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감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중앙은행, 영국, 캐나다, 일본 등 5곳이 합세해 유동성 공급 확대를 발표하면서 CS 사태 진화에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할 뇌관은 제거했지만 휴지 조각이 된 23조원의 CS 채권은 또 다른 불씨다. 한국 국민연금도 CS 회사채에 1300여억원을 투자했다니, 남의 일이 아니다. 투자위험이 더 큰 주식은 가치를 인정받고 오히려 채권은 가치가 추락하면서 기존 금융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도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가 고금리 여파로 파산을 불렀다는 점에서 채권시장의 문법이 다시 쓰일 판이다.

CS는 로마 바티칸의 스위스 용병처럼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CS가 최대의 매력 자본인 신뢰를 잃어 몰락한 것은 역설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살아남은 승자라는 자만심이 오히려 독이 됐다.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이 자기 쇄신을 위해 자금세탁 방지, 직원 규율 강화 등을 추진했지만 CS의 내부 통제는 허술했다. 뇌물을 받고 불법적인 채권을 발행했다가 모잠비크 정부로부터 제소를 당하고, 불가리아 코카인 밀수조직의 돈세탁에 연루되는 등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2021년 4월 불거진 ‘아케고스 사건’은 CS의 고위험 투자를 상징한다.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이 운용하는 펀드 ‘아케고스’가 투자한 주식이 일제히 폭락하며 펀드에 돈을 댄 대형 투자은행이 손실을 봤는데 CS는 전년도 순이익의 두 배 수준인 55억달러(약 7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이 한 건으로 날렸다. 결국 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CS에 대주주는 투자를 끊었고 고객들은 뱅크런으로 달아났다.

고물가·고금리의 사선을 걷고 있는 우리 기업과 금융권은 CS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가계부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약한 고리들을 선제적으로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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