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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빈틈없이 치고 받는 대사…파우스트 유인촌 vs 악마 박해수
오는 31일 LG아트센터 ‘파우스트’
배우 유인촌 박해수 박은석 원진아
“‘파우스트’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범인들이 ‘현자’라 칭송하는 인간. 이 곳은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파우스트의 서재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의 그는 지금도 글을 쓰고 학문을 익힌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느니라’. 첫 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자. 오오, 정령들이 나를 돕는구나.” 영감이 물어다줘 길어올린 단어가 있었다. “태초에 ‘계약’이 있었느니라”. 끝끝내 건져올린 단어 하나에 메피스토는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다.

“너, 이름이 뭐냐?” (파우스트)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을 경멸하는 분치고는 질문이 꽤 소박하십니다. 항상 악을 행하지만, 늘 선을 위해 힘쓰지요.” (메피스토)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파우스트. 인간 파우스트를 두고 신과 내기를 한 메피스토. 대선배 유인촌과 박해수의 치고 받는 대사 속에 ‘위험한 계약’이 성사된다.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 역을 맡은 박해수 [LG아트센터, 샘컴퍼니 제공]

괴테가 일생을 매달려 쓴 고전 ‘파우스트’(3월 31일 개막, LG아트센터 서울)가 무대로 돌아온다. 인간의 욕망을 깊이 탐구하는 이 작품에선 1996년 연극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를 맡았던 유인촌이 27년 만에 파우스트를 연기한다. 박해수는 메피스토로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개막 디데이를 세고 있는 ‘파우스트’의 배우들은 양정웅 연출의 진두지휘와 함께 연습에 한창이다.

‘무대가 고향’인 박해수는 오랜만에 돌아온 연극에선 색다른 악마의 옷을 입었다. 박해수가 해석한 메피스토는 독특하다. 어둠침침하고 소름돋는 절대악(惡)이 아닌, 팔딱거리며 살아숨쉬는 악이다. 시종일관 장난기로 가득 차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를 하고, 악마의 욕망이 구축한 세계로 인간을 잡아끈다.

최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의 연습실에서 만난 박해수는 “악함보다는 악의 평범성에 초첨을 맞췄다. 한 인물도 태초엔 어떤 씨앗이 뿌려졌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우스트’의 유인촌 [LG아트센터, 샘컴퍼니 제공]

‘메피스토의 상징’이던 유인촌은 박해수의 연기에 대해 “박해수의 메피스토는 살아있는 지금의 인물”이라며 “예전에 내가 메피스토를 연기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이 시대에 맞는 메피스토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칭찬했다.

‘달라진 시대’에 다시 쓰는 고전은 각각의 캐릭터를 해석하는 관점도 달라진다. ‘코리올라누스’, ‘페르귄트’, ‘햄릿’ 등 고전을 감각적으로 해석해온 양정웅 연출가는 “‘파우스트’는 200년이 지난 고전이지만, 200년 전 인간과 현재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인간 원형의 아이러니컬하고 모순적인 모습이 파우스트를 통해 잘 그려지고 있고, 악마 메피스토는 현실적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꿰뚫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는 수많은 물질적 유혹에 노출돼있고, 인간이 욕망에 집중하면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게 돼요. 메피스토의 대사 중엔 현대인의 고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들이 많아요.” (양정웅)

이 연극의 독특한 지점은 파우스트 역할에 두 명의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점이다. 노년의 파우스트가 등장하는 1막은 유인촌이, 악마와의 거래로 젊어진 파우스트가 나오는 2막은 박은석이 책임진다. 유인촌은 “예전엔 파우스트 역할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으로선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에 도달했음에도 뭔가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그러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박은석은 “감히 제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1막의 상황과 분위기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며 “많이 허우적대고 있다. 고민하는 만큼 다른 해석과 깊은 연기가 나올거라 생각한다. 마지막날까지 허우적될 예정이다”라고 했다.

‘파우스트’에서 그레첸 역을 맡은 원진아 [LG아트센터, 샘컴퍼니 제공]

불멸한 고전의 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스펙타클’을 입었다. 거대한 LED 패널을 활용해 신의 영역과 정령들을 표현하고,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4대 원소 중 하나인 흙을 다량의 코르크로 구현해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적인 무대를 입은 고전은 동시대의 이야기로 관객과 만난다.

‘파우스트’와 인연이 깊은 유인촌은 “‘파우스트’는 우리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라며 “200년 전의 이야기이나, 과거와 현재, 200년 뒤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는 아름답다’는 파우스트의 현재에 대한 통찰은 미래에도 유효합니다. 지금 이 작품을 봐야하는 이유는 ‘파우스트’가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보면서 누군가는 뜨끔할 거예요.” (유인촌)

영상=안경찬 PD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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