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영상] 소프라노 황수미 “나의 소리에 만족한 적 없다” [인터뷰]
오는 30일부터 오페라 ‘마술피리’
프로 데뷔부터 귀국 전 무대까지…
‘파미나 장인’다운 각별한 인연
꾸준한 담금질로 찾은 나만의 소리
음악과 가사에 맞는 소리 내려 노력
“내 말에 책임지는 음악가이고 싶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인 황수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개막을 앞둔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을 맡은 황수미는 이번 공연에 대해 “서울에서의 오페라 데뷔 무대”라고 했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럴 듯한 소품도 세트도 하나 없는 연습실. 음악가의 ‘상상력’은 텅 빈 공간을 동화로 바꾼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낯선 언어를 매혹적으로 전달하는 품위있는 음성, 음절 하나 하나에 실어 보내는 섬세한 감정들…. 우아하고 청량한, 온화하며 강인한 황수미의 목소리는 무채색 연습실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다. 그는 ‘마술피리’의 장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공연한 작품이 바로 ‘마술피리’였어요.”

독일 본 오페라 극장, 스위스 제네바 국립 오페라 극장 등 유럽 유수 무대를 사로잡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황수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페라 ‘마술피리’(3월 30일~4월 2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개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이번 공연에 대해 “서울에서의 오페라 데뷔 무대”라고 했다.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는 ‘국가대표 성악가’들이 총출동한 작품이다. 황수미를 비롯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테너 김건우, 바리톤 김기훈이 함께 한다. 다시 만나기 힘든 조합이다.

파미나 장인’…탄탄대로 뒤에 쌓은 성실함의 시간

황수미에게 ‘마술피리’는 언제나 각별하다.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는 모차르트의 작품인 데다, 그의 커리어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프로 데뷔 무대도,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 무대도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중 하나인 ‘마술피리’의 파미나였다.

수없이 많은 무대에서 ‘마술피리’를 만나 왔지만, 그는 이 작품이 “수월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마술피리’를 만날 때엔 언제나 새로움과 어려움이 공존한다. 황수미는 “파미나의 아리아는 불러도 불러도 어렵다”며 “모든 파미나들이 어려워하는 아리아”라고 말했다. 노래를 부를 때엔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이 따라오고,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다.

“모차르트 오페라는 인간의 절절한 감성이나 드라마틱한 표현보다는 굉장히 정제되고 정리된 음악을 해야 해요. 그래야 모차르트 특유의 생동감 있는 사운드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악적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기악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작품이죠.”

성악가들에겐 과장을 뺀 정돈된 소리, 그러면서도 생생한 감정의 전달이 요구된다. 게다가 파미나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악당에게 붙잡힌 공주’라는 한 줄로는 설명이 어렵다. 황수미는 파미나를 ‘연약한 공주’가 아닌 “외유내강의 ‘신여성 스타일’”로 해석한다. 주체적이고 강인한 한 사람으로의 파미나가 황수미의 분석과 이해를 통해 그려진다.

황수미의 무대는 그가 지나온 ‘시간의 역사’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독일 본 국립 오페라극장의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탄탄대로를 갔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성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고 졸업 후 서울대에 입학하며 “너무나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진로 고민과 슬럼프가 친구처럼 따라왔고, “값진 시간과도 같았던 고민의 날들”을 지나오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가가 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헬무트 도이치는 “황수미는 노래에 모든 감정을 담아내는 대가 못지않은 표현력을 가졌다”고 극찬한다.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할을 맡은 황수미(오른쪽)와 바리톤 김기훈의 연습현장 [세종문화회관 제공]

음악가로서 무대에 설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리 위주의 공연”이 아닌 “종합예술이라는 오페라의 장르에 걸맞는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공력을 들인다. 유럽 무대에서 동양인 성악가를 향한 시선의 벽을 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연습으로 단련했다.

“우리는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를 가진 동양인이잖아요. 유럽 사람들이 모국어로 부르는 음악의 뉘앙스와 맛을 살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정확하게 발음해야 해요.” 단어의 음절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열린 발음’, ‘닫힌 발음’, ‘장모음’, ‘단모음’”은 물론 “음악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모음의 색깔”까지 고려한다.

“오페라는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스 퍼포머’로서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직업은 다른 연주자와 달리 가사가 있는 음악을 전달해야 하기에 표현의 문제는 늘 성악가들의 숙제예요. 음악에 맞는 소리, 가사에 맞는 컬러가 나오는 연주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히 심사위원이었던 헬무트 도이치(왼쪽)는 “황수미는 노래에 모든 감정을 담아내는 대가 못지않은 표현력을 가졌다”고 극찬했다.[롯데문화재단 제공]
‘롤모델’ 교수님…“내 말에 책임지는 음악가이고 싶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황수미는 지난해 9월부터 경희대학교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첫 학기를 마치고 300명이 넘는 입시까지 무사히 치렀다. 지금은 두 번째 학기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황수미는 “요즘 이 시대에 입시를 봤다면 100% 떨어졌을 것”이라며 웃었다. 학생 시절엔 고음이 나지 않아, “대학교 3학년 때까진 부를 수 있는 아리아가 없었다”고 한다. 한 때는 고음이 없는 가곡을 주로 불렀고, ‘자신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당연히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입시를 치르며 보니, 학생들의 선곡 대부분이 고음의 화려한 아리아에 많이 치중돼 있더라고요. 어떻게 된 건지, 다들 고음이 그렇게 잘 날 수가 없어요. (웃음) 그런데 성악은 기악과 달리 몸이 악기인지라, 몸이 성장하며 목소리도 변해요. 아직 어린 학생들이기에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자신의 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황수미도 자신의 소리와 음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명실상부 ‘최정상’이며, 무수히 많은 후배들의 ‘롤모델’로 꼽히지만, 스스로는 “내 목소리에 만족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전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괴로워 음반도 잘 듣지 않아요. 듣다 보면 너무 괴롭고 불편해지더라고요. 계속 안 좋은 것만 들려요. 연주자로서 자기 자신에게 100점 만점을 주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클래식 FM의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즐겨 듣는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라는 멘트가 나온 적이 있어요. 많이 와닿더라고요. 너무 무거워지면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힘들 것이고, 가벼워지면 날아다니는 소리가 나겠죠. 파트를 불문하고 밸런스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 직업에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에서 파미나 역할을 맡은 황수미, 김기훈의 연습현장 [세종문화회관 제공]

그의 모든 시간은 담금질의 연속이다. 음악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감정을 그만의 목소리로 전달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한다. 한 해 한 해를 보내며 찾아올 목소리의 변화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고민하는 때다. 그는 “10년 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는 지금보다 더 퓨어했다”고 말한다. 음악계의 평가는 다르다. 감정의 표현이 깊어졌을 뿐, 그의 목소리는 꾸준히 전성기다.

“몇 년 사이 목소리의 변화가 크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교적 발성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는 작업을 많이 해서인 것 같아요.” 황수미에게도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같은 작품의 제안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하고 싶은 작품이나, 당장의 욕심으로 하게 될 경우 리스크가 큰 작품”이 되리라 판단했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드라마틱한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작품들이에요. 아무리 이성적으로 정리해서 부른다 해도 분명히 어딘가에 감정적으로 부딪히고, 발성적으로 어려움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스스로 발성적으로 정립이 돼서 너무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 때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조금은 미뤄뒀던 것이 아직은 건강한 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팬데믹을 마주 하며, 독일에서 예정된 무대들이 줄줄이 취소됐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선택지를 마주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생각의 변화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순리라고 생각한다”며 학교로 오게 된 이유는 말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선택했어요. 중요한 것은 음악을 계속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음악을 하고 있는 이 자리가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저를 찾아주는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요.”

예상치 않은 길에 접어들며 교육자로의 무게도 함께 고민하는 때다. 학생들에겐 “당장의 노래 실력보다는 작품을 대하는 자세”를 더 강조한다. “내가 하는 노래가 뭔지, 가사는 어떤 내용인지, 어떤 음악으로 구성돼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작품을 곱씹어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음악에도 나타나니까요.”

황수미의 음악은 온전히 그 자신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음악엔 자기 자신이 묻어나기에, 늘 진중하고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엔 학생들과 만나며 “스스로도 배우는 시간”이라고 했다. 교육자로의 책임감이 상당하다. 지금도 그는 “더 나은 음악가가 되기 위한 길”을 가고 있다.

“새로운 타이틀을 쥐고 하니 처음엔 연주가 무섭더라고요. 학생들에게 레슨할 때 했던 이야기를 제 무대에서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압박이 굉장했어요. (웃음) 제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음악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교육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 길을 묵묵히 가며, 음악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성악이 아닌 음악이요.”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