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日 “과거 담화 계승” 12일 만에 ‘징용’ 강제성 희석…한일관계 어쩌나
韓 강제징용 ‘선제적’ 해법안에 日 ‘선의’ 기대했지만…
日 호응조치 없으면 과거사 문제 때마다 尹정부 ‘부담’
당정, 역사왜곡과 정상회담 분리 대응…협의체 조율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오후 외교부에 초치된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일본이 ‘역대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힌 지 12일 만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기술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켜 후폭풍이 거세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안을 선제적으로 발표하고 기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향후 야스쿠니 신사참배, 사도광산 유네스코 재등재 등 과거사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비판이 되풀이되는 외교적 덫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149종의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인 강제노역 등과 관련한 기술에서 강제성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적시해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외교부는 곧바로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무리한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대사대리’ 자격으로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는 현재 일본에 일시 귀국 중이다.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과 초치는 과거 역사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 정부가 대응하는 전례에 따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4월 처음으로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시각이 반영된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자 주일 한국대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강경 조치를 취한 것이 이례적이었다.

다만 이번 대변인 성명에는 강제동원 기술과 관련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 정부가 스스로 밝혀온 과거사 관련 사죄와 반성의 정신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하여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던 점을 상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직접적인 사과가 없다는 지적에 한국 정부는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 등 고위 관료가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힌 뒤 12일 만에 역사 왜곡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는 모순적인 일본 정부의 태도에 진정성은 힘을 잃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대국민 담화 성격의 국무회의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올 것”이라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의 명시적 사과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열어 2024년도부터 초등학교에서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중 일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기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사진은 현행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돼 있는 자료사진 설명을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꾼 도쿄서적 6학년 사회 교과서. 위쪽이 현행 교과서. [연합]

특히 문제는 일본의 선의를 기다리며 한국이 선제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정부의 입장이 향후 대일관계의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는 매년 반복되는 문제인데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재등재 추진, 일본 관료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및 공물봉납 등 과거사 문제가 줄줄이 예고돼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해법안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빈손외교’라는 비판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는 데에도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한 과거사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은 대학입시가 대부분 근대 이전에 끝나 자신들이 잘못했던 시대의 행적에 관한 공부를 대부분 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훈을 얻지만, 일본은 그 점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차이”라고 말했다.

정부 여당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와 한일 정상회담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며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기존의 정부 입장을 견지하며 일본 측과 계속 소통하고, 일본 교과서 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히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한일정상회담의 후속조치인 한일 외교차관 전략대화, 국장급 안보정책협의회, NSC 간 경제안보대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