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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 따러간 김혜수, ‘이 시계’ 건지러 풍덩? 1등 밀수품 롤렉스의 비밀 [김유진의 브랜드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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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꼭 사야만 재밌나?” 때론 그들의 뒷얘기를 쫓는 게 더 쫄깃하다. 돈 한푼 안 들이고 ‘뭘 좀 아는 척’ 할 수도 있다. 입고 들고 쓰고 타던 사람도 몰랐을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 브랜드피디아에 담았다.
영화 '밀수'에서 해녀 출신 밀수 거래상으로 변신한 배우 김혜수. [영화 예고편]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1970년대 전북 군산을 닮은 가상의 도시 군천. 굴 따러간 해녀 김혜수와 염정아가 굴 대신 바닷속 밀수품 상자를 건져올린다. 바닷물 흥건한 밀수품 상자에서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는 건 금, 다이아, 그리고 ‘롤렉스’(Rolex) 시계다. 이달 13일까지 435만 관객을 돌파한 류승완 감독 영화 ‘밀수’ 속 설정이다.

비싸고 실용적인 시계의 대명사 롤렉스. 깊은 바닷속 다이버를 위해 만든 다이버 시계는 어떻게 시장의 판도를 바꿨을까. 롤렉스 첫번째 엠버서더 역할을 한 26살 수영 여제(女帝)는 누구일까. 17m를 사이에 둔 롤렉스와 오메가의 자존심 대결 승자는 어디일까. 롤렉스와 밀수품 1위 타이틀을 다퉜던 브랜드 ○○○○은 무엇일까. 무더위가 여전한 여름의 끝자락, 롤렉스의 바다로 풍덩 빠져보자.

1927년, 메르세데스 글릿즈(왼쪽)과 데일리메일 신문광고(오른쪽). “롤렉스 오이스터의 출시와 전 세계적인 성공 행진.” 특허 성능을 입증할 기가 막힌 이벤트에 흥분한 롤렉스 창립자 한스 빌스도르프는 데일리메일 신문 1면에 그녀의 횡단 소식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했다. TV는 물론이요, 별다른 광고 매체가 없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 대대적 홍보를 한 셈이었다. [롤렉스]
롤렉스 최초의 엠버서더, 알고보니 ‘밀수’ 김혜수·염정아 닮은 꼴

100년 전까지만 해도 시계는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회중시계’ 스타일이 대세였다. 시간을 볼 때마다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확인하는 모습은 당시로선 흔한 신사의 모습이었다. 대세를 뒤집은 건 실용성을 자랑하며 ‘시계는 손목에 차는 것’이라는 인식을 새로 쓴 스위스 브랜드 ‘롤렉스’다.

그 시작은 롤렉스가 1926년 특허를 획득한 손목시계 케이스, 오이스터(Oyster·굴)였다. 세계 최초로 방수 기능을 탑재한 오이스터는 굴 껍질처럼 단단히 닫혀있어 물 속에서도 끄떡 없었다.

1922년 출시한 서브마린(Submarine). 외부에 이중 케이스를 장착한 롤렉스 최초의 방수·방진 손목시계. 훗날 롤렉스의 상징인 서브마린(Submarine) 출시로 이어졌다. [롤렉스]

‘물 속에서 쓸 수 있는 시계’는 당시로선 믿기 힘든 파격이었다. 롤렉스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퍼포먼스를 감행한다. ‘여성 최초’ 타이틀을 걸고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데 도전한 메르세데스 글릿즈(Mercedes Gleitze)의 도전을 함께 한 것. 1927년 26살의 글릿즈는 롤렉스 오이스터를 착용한 채 10시간 넘게 헤엄쳐 바다를 건넜다. 그녀의 도전을 함께 한 롤렉스의 성능은 10시간의 사투에도 완벽했다. 회중시계에서 손목 시계로, 롤렉스가 시장의 판도를 뒤집은 순간이다.

영국인 수영선수 메르세데스 글릿즈(Mercedes Gleitze). [British Pathé]

롤렉스의 관심은 이제 더 깊은 바다로 향했다. 1950년대, 스쿠버 다이빙과 심해 탐험의 세계가 열리자 롤렉스는 다이버를 위한 방수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953년 출시된 서브마리너(Submariner)는 수심 100m까지 방수 성능을 제공하는 최초의 다이버용 손목시계로 기록됐다. 지금도 롤렉스의 대표 인기 모델로 롱런 중인 그 모델의 시초다. 뒤이어 1978년 씨-드웰러, 2008년 롤렉스 딥씨 등 더 강력한 방수 성능을 지닌 툴 워치가 줄줄이 나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롤렉스 시계 가운데 최고의 잠수 성능을 자랑하는 ‘딥씨 챌린지’를 소개하는 모습. [롤렉스]

롤렉스 시계 가운데 최고의 잠수 성능을 자랑하는 ‘딥씨 챌린지’는 수심 약 1만1000m까지 방수가 가능하다. 이 수치는 영화 ‘타이타닉’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몸소 증명했다. 2012년 캐머런은 태평양 수심 1만 908m 심해로 하강해 인류의 최저 심해 잠수 기록을 다시 썼다. 이 역사적 순간을 그의 손목에서 함께 한 게 롤렉스의 ‘딥씨 챌린지’다.

사실 캐머런의 심해 잠수기록은 이미 깨졌다. 롤렉스의 ‘심해 챌린지’ 신기록을 깬 건 바로 또 다른 시계 브랜드 오메가(Omega)다. 롤렉스에 질세라 2019년 해저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Victor Vescovo)를 영입해 1만 925m라는 새로운 시계 기록을 수립했다. 롤렉스가 세운 1만 908m보다 17m라도 더 내려가고 싶었던 오메가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숫자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60분 눈금이 있는 베젤을 통해 다이버들은 잠수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롤렉스]
영화 속 얘기? 밀수품 1위는 롤렉스

롤렉스는 영화 속 해녀들의 밀수품이 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바닷물에 풍덩 빠뜨려도 고장나지 않는데, 명품 중에서도 슈퍼카 다음으로 비싼 가격대를 자랑하는 '시계' 생산 브랜드이기 때문. 실제로 롤렉스는 밀수품 비중이 가장 많은 브랜드로 꼽힌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국내로 밀반입을 시도하다 세관 당국에 적발된 브랜드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롤렉스다. 가짜 롤렉스는 5년간 3065억원어치가 적발돼 가장 높은 액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가짜 롤렉스 물건이 1219억원어치 적발되면서, 기존 1위였던 루이비통을 앞질렀다. 밀수품 품목 가운데는 시계가 9201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영화 '밀수' 예고편]

“해녀들을 동원한다고요? 동원 인원을 최소로 해야 기밀 누설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해녀들을 동원한 영화 속 ‘던지기 수법’ 밀수 형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밀수업자들을 단속하는 해양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물건을 바다 한 지점에 가라앉히면 해녀들이 끌어올리는 영화 속 설정에 대해 옛날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 속 1970년대 설정처럼) 물건이 바닷 속 깊숙이 가라앉아버리면 찾기가 어렵다. 요즘은 띄워둔다. 바다에 불상의 선박이 밀수품을 던지고 가라않지 않게 부력제를 달아두고 떠난다”며 “물건이 물살에 떠내려 갈 수 있어 밀수품에 GPS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해점(바다상 좌표)을 파악하는 식이다. 아날로그 방식 밀수는 옛날 얘기”라고 설명했다.

[영화 ‘밀수’ 스틸컷]

그러면서 해상으로 밀수되는 롤렉스는 대다수 중국산 ‘짝퉁’이라고 귀띔했다. 방수기능은 없는, 디자인만 따라한 모조품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밀수품 롤렉스 대다수가 짝퉁인 이유는 간단하다. 롤렉스는 공식 매장에서도 품귀 현상을 빚는 인기 브랜드다. 없어서 못 팔고 있으면 웃돈이 붙는 롤렉스 시계를 어디서 구해서 밀수하느냐는 것.

만에 하나 진품 롤렉스를 밀수하려다 세관에 붙잡힌다면? 일단 시계부터 빼앗긴다. 시계값이 5000만원 미만이면 통고 처분을 받아 전과는 남지 않는다. 다만 롤렉스 시계값의 30% 정도를 벌금으로 내야한다. “몰수된 진품은 공매(공공경매)에 부쳐져 국고로 환수됩니다. 꿈도 꾸지마세요.”

'모히 밀수과다' 기사. 1926.07.27 조선일보 (왼쪽). '위조은화 밀수 군산서가 체포'기사. 1931.8.15 동아일보(오른쪽)
“롤렉스만 있나?” 군산 앞바다 밀수품史…100년전 조선 마약 ‘모루히네’

영화 ‘밀수’는 조성민 프로듀서가 군산의 한 박물관에 갔다가 1970년대 밀수에 해녀들이 개입됐다는 자료를 본 뒤 만든 이야기다. 영화 속에선 ‘군천’이라는 가상의 도시로 나오지만, 지도 속 위치 등에서 실제 모티프가 군산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 속 염정아. 밀수 조직에 가담하는 전북 군천(가상의 지명) 출신 해녀 역할을 맡았다.

전북 군산은 실제로 일제 시대인 1920년대부터 밀수 메카로 꼽히던 도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밀수됐던 주요 품목은 모르핀(모루히네·모히) 등 마약류와 총기 등이다. 특히, 아편을 정제한 모르핀은 아편연(阿片煙)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생긴 접근성으로 느슨한 규제의 틈을 급속도로 파고들었다.

메르세데스 글릿즈가 영국 해협을 헤엄치던 1927년, 일제 치하 경성은 밀수된 아편에 중독된 10만 명의 ‘자신귀’(刺身鬼)가 득시글거렸다. 자신귀란, 자기 몸을 찌르는 귀신이라는 뜻으로 당시 모르핀 주사를 맞던 중독자들을 부르던 말이다. 당시 조선일보 1927년 3월 12일자 신문에 실린 르포 기사는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아편쟁이가 전국에 10만이나 된다 하는 것은 개산에 불과하며 기실에 이르러서는 20만이 될는지 30만이 될는지 알 수 없다’고 적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 속 김혜수.
100년 뒤 되풀이 된 마약 밀수史…그땐 없고 지금은 있는 것

2023년 대한민국도 100여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 상반기 밀수 과정에서 관세청에 적발된 마약류는 역대 최대인 329㎏이다. 이는 서울 인구의 절반도 넘는 50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실제 발생 범죄 중 잡힌 사람 비율)을 28분의 1로 두고 추산하면, 우리나라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최소 24만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지난 4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마약 범죄는 하루가 멀다하고 터진다. 지난 2일에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7가지 약물을 투약한 롤스로이스 운전자 신모(28) 씨가 차로 인도를 덮쳐 20대 여성을 뇌사에 빠뜨렸다. 신 씨의 체내에선 케타민, 디아제팜, 미다졸람, 프로포폴, 아미노플루티느라제팜 등 약물이 검출됐다.

‘밀수’가 그린 해녀들의 합동작전은 유쾌하지만, 국내로 밀수되는 어마어마한 마약류는 공포 그 자체다. 마약은 어느새 강남 학원가까지 파고들어 음료수의 모습을 한 채 아이들 손에 쥐어지고 있다. 자신귀가 창궐한 100년전 경성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촌각을 다투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어깨가 무겁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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