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추가 공급물량 12만 아닌 5만5000가구
분양가규제 그대로 두고 공사비 증가만 허용한다?
‘사업성 높이는 대책 빠져 효과 없다’ 전망도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앞뒤가 맞지 않는 맹탕 대책이다.”,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한 점은 긍정적인데 당장 공급 확대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26일 발표한 ‘국민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에 대한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가 싸늘하다. 대책이 나온 직후 의견을 물은 전문가 십여명 중 긍정적인 평가를 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과장되고 혼란만 키우는 대책?= 일단 ‘공공 12만호 추가 공급’이라는 계획 자체가 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에 공공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신도시 3만호, 신규택지 8만5000호, 민간 물량 공공전환 5000호 등 총 12만호 물량을 추가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신규택지 추가 물량 중 6만5000호는 작년 8월 발표한 ‘신규택지 15만가구 공급계획’에 이미 섞여 있던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한 신규택지 주택은 2만호다. 결국 이번 대책으로 새롭게 추가된 공급 물량 규모는 정확히 5만5000가구란 이야기다. “정부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숫자놀음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나온 이유다.
이번 공급대책엔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들어 규제지역의 분양가상한제나 민간택지에 적용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기준은 그대로 두면서 ‘공사비 증액기준’을 높여주겠다는 건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분양을 하거나 사전청약을 받을 때 주택수요자들은 분양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들에게 나중에 공사비가 올랐으나 수억 더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시공사와 수분양자들 사이 분쟁을 키우는 잘못된 제도 개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현실화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하는 공사비 증액 기준 마련은 허황된 것이고 나중에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외국인 건설인력 채용 쿼터’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외국인 건설인력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저임금으로 공사비를 낮추고 인력 수급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최근 건설현장에서 철근 배치 간격을 잘못 표기하거나 제대로 시공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 이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공사현장 전문성 강화’ 방향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LH 외벽 철근 누락 사태 회의에 참석해 "시공 과정 공공주택 일제 점검"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 |
▶인허가 빨리 해준다고 공급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패스트트랙 도입 등 주택공급 관련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공공택지 전매제한을 완화하는 등 주택사업 여건을 좋게 한다고 곧바로 공급 확대로 직결되진 않는다고 강조한다.
사업성이 나빠져서 주택사업자들이 인허가를 미루는 상황인데, 행정 절차를 서둘러 준다고 갑자기 적극 나설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행정 절차가 빨라지면 간접적으로 사업비가 절약되는 효과가 있긴 하겠지만 실제 얼마나 공급 효과가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예컨대 정부는 ‘규제완화 효과로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가 올해 상반기만 111곳으로 늘어났다’고 공급 정책의 성과를 자랑했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 전문가는 “안전진단을 통과한지 이미 10년도 더된 은마아파트가 아직 조합 설립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정부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세금규제와 분양가 규제 완화 등 사업성을 높여주기 위한 제도개선이 없으면 안전진단 등 사업절차를 쉽게 해줘도 공급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 계획은 계열사 간 전매 금지 규정은 여전히 유지하도록 해 효과가 크게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요즘 시기에 공공택지를 매입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있는 건설사는 대부분 계열사를 거느린 중대형 건설사여서다.
또 정부가 신규택지 후보지를 조기 발표하고 사전청약을 확대한다고 한들 실제 공급이 언제 이뤄질지는 여전히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중장기 공급 확대를 위한 불합리 개선은 긍정적= 다만 이번 공급대책이 세부적으로 공급 관련 절차상 불합리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들이 다수 담겨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업계의 오래된 난제인 ‘학교시설 기부채납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한다’거나, ‘표준계약서’를 통한 공사비 증액 기준을 마련한다거나 한 것이 대표적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조건인 ‘시공사 도급순위 700위권 내’ 기준을 폐지한 것도 성과로 여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대책엔 주택업계에서 그동안 정부에 건의해온 여러 애로 사항에 대한 개선책을 포함해 기대가 된다”면서도 “이런 개선책이 실제 시행 과정에서 얼마나 공급 확대 효과를 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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