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공장 상업생산, 2공장은 내년 상반기
中추격·공급과잉 이겨낼 ‘비장의 무기’
사바주 정부도 “SKC는 최고 파트너”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 소속 직원들이 동박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SKC 제공] |
[헤럴드경제(말레이시아 사바주)=양대근 기자] “당초 연산 5만t(1·2공장 합계) 규모로 공장이 설계됐지만, 그동안 축적한 생산성 향상 기술을 모두 적용해 연 5만7000t 규모까지 생산능력을 확보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인 생산성과 원가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 관계자)
지난 1일 찾은 동말레이시아(보르네오섬) 사바주의 주도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연면적 약 34만㎢ 규모의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가 위치해 있다.
KKIP의 중심부로 좀 더 들어가자 SKC(대표이사 박원철)의 동박 자회사인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1공장과 2공장이 위용을 드러냈다. 동박업계 최초로 글로벌 생산기지가 언론에 공개된 순간이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 전경 [SKC 제공] |
약 12만평의 부지에 세워진 이 공장은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동박의 원가경쟁력 강화와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SK넥실리스가 추진한 첫 해외 생산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투자 금액만 약 9000억원으로, 지난 2021년 7월 첫 삽을 떴다.
축구장 23개 크기(16만2700㎡)로 먼저 지어진 1공장은 올해 상반기 시생산을 거쳐 지난달 23일 첫 제품 출하에 성공해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1공장과 똑같은 모습과 규모의 ‘쌍둥이 공장’인 2공장은 현재 마무리 공사 단계에 들어갔으며, 2024년 1분기 완공이 예정돼 있다. 2공장의 1생산라인과 2생산라인이 내년 3월과 5월께 각각 상업생산에 들어가면 연산 5만7000t로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동박 생산 체제가 모두 구축되는 것이다.
이날 취재진에게 빗장을 연 1공장 내부는 그야말로 SK넥실리스의 최신 기술력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생산라인에서는 성인 키의 1.5배가 훌쩍 넘는 지름의 드럼(제박기) 60여대가 분주히 돌아가며 머리카락보다 얇은 구리막을 뽑아내고 있었다. 제박기에서 생산된 폭 1.4m의 동박은 두께가 1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수준에 불과했지만 한 치의 주름도 없었다. 펴져 나온 동박은 곧바로 롤 형태로 감기는 ‘롤 투 롤(Roll to Roll)’ 방식으로 제품화 과정에 들어갔다. 동박 롤 하나의 무게만 약 6~7t에 달한다.
동박은 구리를 펴서 얇은 필름으로 만들어낸 제품이다. 스마트폰·노트북 등 배터리를 사용하는 대부분 제품에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동박 제조 공정은 크게 용해(원재료 구리를 녹여 도금액 제조)→제박(구리용해액에서 구리 이온을 티타늄 드럼에 전착시켜 동박 제조)→슬리팅(고객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폭으로 동박 롤 가공)→품질검사→출하 순으로 구성된다.
1996년부터 인쇄회로기판(PCB)용 동박 사업을 영위해 온 SK넥실리스는 2003년부터 배터리용 동박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배터리용 동박 분야 세계 1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이 지난 1일 취재진에게 공장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C 제공] |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법인장은 “SK넥실리스는 세계 최초로 4마이크로미터 두께 동박을 생산했고, 세계 최장(7만7000m) 길이와 최대 폭(1400㎜) 생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말레이시아 공장에는 그동안 쌓은 혁신적인 노하우가 모두 반영됐다”고 밝혔다.
지름 3m의 드럼을 장착한 초대형 제박기가 대표적이다. 이 제박기는 글로벌 경쟁사 대비 10% 이상 큰 규모로, 드럼이 클수록 투입 전류가 늘어나며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지게 된다. 업계 최초로 도입한 자율주행 자동 크레인도 이목을 끌었다. 동박 롤을 고객사 주문에 맞춰 세팅된 슬러팅 머신으로 옮기는 작업을 담당하며, 역시 인건비와 제작시간 감축을 위한 핵심 설비로 꼽힌다.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동박공장 전경. 총 2개 공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첫 번째 공장(위 건물)은 지난달 말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아래 2공장은 내년 상반기 상업생산을 시작한다. [SKC 제공] |
SKC는 사바주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기업이다. 코타키나발루는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사바주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관광 비중은 2% 안팎에 불과하다.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고 전세계로 연결돼 있는 물류가 최대 강점이다.
여기에 주정부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앞세워 해외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도 SKC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SK넥실리스는 외국 기업 중 최장기간 법인세 면제 기간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박 제조원가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비를 크게 줄이면서 친환경성을 강화한 것도 사바주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가능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 공장의 전력비는 기존 한국 공장 대비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비교해도 20~30% 가량 더 저렴하다. 여기에 REC(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사전 확보 및 전력 장기계약 등을 잇따라 체결해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풍진제 말레이시아 사바주정부 산업부장관 [SKC 제공] |
풍진제 사바주 산업부 장관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패스트트랙 방식을 적용해 SKC의 투자 결정부터 인허가, 착공까지 7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이 소요됐다”면서 “(SK넥실리스 투자 이후) 재생에너지와 제조업 분야 등 사바주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SK넥실리스는 폴란드 스탈로바볼라에 연산 5만7000t 규모의 동박 생산공장을 내년 준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다. 최근 전세계 동박 시장이 공급 과잉 상황에 접어들었지만, 동박 시장의 빠른 성장성을 감안하면 기술력과 캐파(생산능력), 원가경쟁력까지 모두 갖춘 SK넥실리스가 더욱 각광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업계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이차전지용 동박 시장은 지난 2021년 26만5000t에서 2025년 74만8000t 규모로 3배 가까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김자선 SK넥실리스 말레시이아법인 동박생산실장은 “배터리가 전기차의 안전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고객사 입장에서) 동박 등 주요 소재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면서 “중국 기업 등 후발주자들이 쫓아온다도 해도 결국 기술력과 생산능력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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