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 침체에 전세 수요 증가세
전문가 대부분 상승 전망 일치
“전세가율 높은 지역 주목해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2월 서울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은 5억1000원을 기록했다. ‘역전세난’ 우려가 컸던 지난 5월 4억900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8월 이후 상승거래가 늘더니 10월(5억333만원) 이후 5억원대로 복귀했다. 같은 달 경기도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은 3억원으로 올랐다. 역시 올 4월 2억9000만원까지 하락했다가 8월 이후 상승세를 탔고 마침내 3억원대를 회복했다. 중위전세가격은 해당지역 전세를 가격별로 줄을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 있는 가격이다.
최근 내년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건설 부동산 관련 연구소들은 주택 매매가격 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셋값 전망은 대체로 일치한다. 하락 전망은 없고 대체로 상승한다는 시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대표적인데, 모두 2024년 전국 주택 전세가격이 2%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은 0.3% 하락하지만, 전셋값은 5%나 뛸 것으로 예상했다.
전세 가격이 뛰는 건 전세 물건 대비 전세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금리 영향으로 월세로 넘어갔던 임차 수요가 다시 전세로 돌아오고, 매매시장 침체로 집을 사려던 매수 대기자들도 일단 전세를 선택하고 있다. 최근 빌라 등 비아파트에서 전세사기 불안이 커지면서, 아파트 전세로 이동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전세보증금 반환 용도에 한해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도 전세에 대한 안정성을 높이며 전세수요를 증가시킨 원인으로 해석된다.
반면, 전세 공급의 주요 수단인 새 아파트 입주량은 급감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아실’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량은 1만5627채로 1990년 이후 가장 적다. 서울 아파트 입주량이 최근 10년간 연평균 3만3000여채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내년 입주량이 3분의1 토막도 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반적으로 입주량과 전세가격은 반비례 관계다. 입주량이 줄면 전셋값이 오르고, 입주량이 늘면 전셋값이 내린다. 예를들어 KB국민은행 조사 기준 2019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떨어졌는데, 그해 서울 아파트 입주량(4만7225가구)은 2008년 이후 가장 많았다.
전셋값 상승세는 집값을 자극한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차이를 나타내는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매매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커진다.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대출을 조금 더 받아 내 집을 마련하자’(실수요)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자’(갭투자 수요)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1.9% 수준이다. 올 7월 50.9%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전셋값이 오르면서 5개월 연속 상승중이다. 최근 흐름처럼 매매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전셋값이 상승한다면 내년엔 전세가율 오름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세가율은 어느 정도까지 올라야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준이 될까. 전문가들은 서울은 ‘전세가율 60% 이상’이면 집값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전세가율 60% 가설은 꽤 오래 전인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직후, 하락하던 수도권 주택시장이 반등했던 시점이 전세가율 60%를 넘어서면서였다는 데서 착안했다.
이는 그 이후에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2010년대 초반 침체됐던 서울 아파트값이 반등한 건 전세가율이 60%를 넘었던 2013년 10월(60.1%)부터였다. 2016년과 2017년엔 전세가율이 70% 이상으로 올랐는데 갭투자 열풍이 불었다. 이는 무수한 ‘영끌족’이 태어난 배경이 됐다.
현재 서울에서도 중랑구(59.5%), 성북구(59%), 금천구(58.3%), 강북구(57.9%), 은평구(57.5%), 종로구(57.1%), 관악구(56.9%), 동대문구(57%), 서대문구(56.5%), 중구(55.7%) 등은 전세가율이 60%에 근접해 있다.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은 경기 여건이 좋아지고, 집값 회복 기대감이 살아난다면 언제든 매수세가 달려들 가능성이 높다. 박일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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