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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수명 다한 대기업 총수 지정제, 땜질 말고 혁파해야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은 지분이 4%뿐인데도 기업집단 총수격인 동일인으로 지정됐는데 (미국 국적의) 쿠팡 창업자 김범석은 왜 지정이 안됐느냐. 역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올해 말까지 미비한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했는데 27일 답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내놨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개인(자연인)이 있는 경우라도 본인과 친족이 국내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 등 예외 조건을 충족하면 개인 대신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공정위가 당초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기업집단 총수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에쓰오일이나 한국GM과의 형평성,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돼 미국 규제기관의 감독을 받는다는 점, 김 의장이 미국 쿠팡Inc 외 국내 계열사 지분을 한 주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두루 참작됐다. 개인 대주주를 총수로 지정하다 보면 에쓰오일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빈살만 왕세자를 총수로 지정해야 하는 정치·외교적 문제까지 생긴다. 미국 통상당국은 김 의장의 총수 지정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대우 조항 위반이라고 반발한다. 에쓰오일은 그대로 둔 채 쿠팡 김 의장만 총수로 지정해 규제하면 미국 기업과 미국인을 차별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동일인과 기업집단 지정을 통한 기업 규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쿠팡 특혜 논란’은 36년 묵은 낡은 제도가 확 달라진 글로벌 산업지형에서 더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60건의 감시 체계에 놓이는 동일인 규제는 1987년 당시 가족 중심 경영을 통해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고 계열사 간 순환출자로 기업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벌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다. 당시 국가 주도 성장정책 아래서 주요 재벌들이 특혜를 누린 것도 사실이기에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혁신형 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주요 플레이어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도 대부분 과거 총수 1인 체제가 아닌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의 수평적인 의사 결정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공정위가 현행 ‘동일인 지정’ 제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찾고 있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제는 땜질 말고 규제혁파 차원의 제도 폐기를 고려할 때다. 국경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투자 환경에서 쿠팡처럼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는 혁신기업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이미 구닥다리가 된 제도로 이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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