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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실이 없어…운동장에서 수업 들어요” 통합학교 곳곳 파행[저출생 학교 통폐합 전쟁]
지역들 통폐합 대안 통합운영학교 고민
도입 20년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 파행
신도시선 공간 부족, 농촌은 교사 부족
“통합학교 법적 근거 만들어 지원해야”

편집자주: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출생아수가 20만명대로 떨어졌다. 1970년대 한해 100만명씩 태어나던 것과 비교하면 출생아가 3분의1 수준이다. ‘국가 멸종’ 급 저출생 영향은 비수도권·지역 학교에 직격탄이 됐다. 전국에서 폐학교들이 속출했다. 자구책인 학교간 통폐합은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가 쉽지 않다. 인구 감소는 현실이다. 하지만 통폐합이 인구 감소를 더 가속화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전국 통폐합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제도적 보완점을 살펴봤다.

충북 소재 한 신도시의 A 통합운영학교는 인근 아파트 대단지에서 학생이 몰리며 지난해 운동장에 모듈 교실을 지었다. [A 학교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충북의 한 신도시에 위치한 A 초·중 통합운영학교(통합학교)는 지난해 운동장에 조립식 모듈 교실을 지었다. 인근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입학생이 몰려든 탓이다. 부족해진 수업 공간을 마련키 위해 모듈 교실을 급하게 지어 올렸다. 이 학교 전교생은 올해 초등학생 990여명, 중학생 322명, 병설 유치원 104명까지 합해 총 1400여명이다.

운동장을 대체하기 위해 이 학교는 임시방편으로 인근 공터를 빌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리가 좁아 주3일은 초등학생이, 주2일은 중학생이 돌아가며 쓰고 있다. 이 학교 교장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공터 빌리는 데에도 처음엔 시에서 활용 계획이 있다고 해 무산될뻔 했다.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며 도와 달라고 해 간신히 부지를 구했다”고 털어놨다.

저출생에 따른 학교 감소·폐교를 막는 대안으로는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 등 서로 다른 학교급을 묶는 ‘통합학교’가 제시된다. 그러나 통합학교는 도입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육 현장에선 부실한 지원 으로 운영이 어렵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대도시 통합학교는 ‘과밀’에 따른 공간 부족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다수다. 교원들 간 갈등도 불거진다. 초등학교 교원과 중등 학교 교원의 운영 체계가 다른 것이 원인이다.

“기승전 '공간부족' 통합학교…운동장에 교실 지어”
[123RF]

통합학교는 특히 어린 자녀가 많은 신도시에서 수요가 많다. 학부모 가구는 몰려있는데,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 학교 신설은 어렵다보니 교육청에서 기존 학교를 통합운영학교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최근엔 서울에서도 현재 운영 중인 초·중 통합학교에 더해 중·고 통합학교를 처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충북 신도시의 A 학교 역시 이런 사례다. 그러나 이 학교 교장은 “학군 배정에 따라 인근 아파트 단지들 가구에서 모두 입학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만 34학급인데 체육관부터 운동장, 급식실까지 모든 문제가 기승전 ‘공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규모로 학생을 받는 상황에서 공간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호소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해 울산에선 통합학교로 설립한 온산중·고등학교를 결국 분리하기도 했다. 지역사회에선 학생들이 운동장, 체육관 등을 함께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편이 크다는 이유로 꾸준히 분리 요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희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간 문제에 대해 교육청 혹은 지자체에서 지원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통합학교에 대한 별도의 제도는 없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필요에 따라 각 학교가 초·중·고등학교를 통합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할뿐, ‘통합학교’에 대한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에 예산이나 교육 과정 등을 모두 따로 편성해야 한다.

세종 소재 한 신도시 통합학교에선 초등학생이 교내 창문을 깨면서 교직원 간 갈등이 빚어졌다. 초등학교 예산이 부족하니 중학교 예산으로 창문을 고치자고 했다가, 중학교 교직원측이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반발한 것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중학교 예산으로 초등학교 예산을 관리하면 나중에 감사에서 징계를 받을 수 있어 곤란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학교 합쳐도, 예산·교육 모두 따로 ‘비효율’

초등학교와 중학교 간 교원 공유가 불가능해 사실상 통합학교 운영 의미가 없다는 호소도 있다. B 통합학교 교장은 통화에서 “결국 두 학교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교장, 교감만 한 명씩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초등 교사와 중등 교사 교원 자격은 분리돼 있다. 모든 학교급 교원을 양성하는 한국교원대에서 복수전공을 통해 초중 학교에서 모두 교육이 가능한 교원을 양성하고는 있지만 전체 교원의 극히 일부다.

제주 우도면 소통합학교 우도초중학교에선 체육 교사가 도덕 수업까지 함께 가르치고 있다. 전교생이 60명 규모로 적어 교원 배치가 되지 않는 탓이다. 이강식 우도초중학교 교장은 “복수자격을 가진 교원들이 많이 배치되면 좋겠지만 공립학교 입장에선 가려서 받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통합학교 법적 지위 없어…정부 관심 가져야”
[123RF]

중학생이 줄어 수업 시수가 부족해진 교사들이 여러 학교를 돌며 ‘순회’를 다니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교사 입장에선 여러 학교를 돌다보니 소속감이 사라지고, 학교 입장에서도 해당 교사를 ‘시간강사’ 정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교원 복수자격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훈호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외국 사례들을 봐도 초·중등 교사를 분리해서 배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도심에선 신도시 문제로, 농촌에선 인구 감소 문제로 통합학교를 고민하는 곳들이 늘어나는만큼 정부와 국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초등 교사와 중등 교사가 각각 단독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는 현행 제도 하에선 초·중등 통합교육이 의미 있게 운영되기 어려울뿐 아니라 효율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예비 교사 양성 과정에서 임용을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심화과정을 통해 초등 예비교사가 중등 교사 자격증을, 중등 예비교사가 초등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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