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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에 못 끼면 이 시대의 배우가 아니다”…명배우 총출동한 2024년판 ‘햄릿’
세 번째 시즌 맞은 연극 ‘햄릿’
내달 9일부터 84일간 대장정
무대 경력 60년을 넘나드는 ‘연극계 전설’부터 연극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2세대 K-팝 그룹 f(x) 출신 루나(31)까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 24명이 연극 ‘햄릿’ 을 위해 뭉쳤다. [신시컴퍼니 제공]
무대 경력 60년을 넘나드는 ‘연극계 전설’부터 연극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2세대 K-팝 그룹 f(x) 출신 루나(31)까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 24명이 연극 ‘햄릿’ 을 위해 뭉쳤다. [신시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여기 못 끼면 그게 배우인가요. 그래서 억지로 꼈어요. (웃음)”

데뷔작은 1963년 연극 ‘생쥐와 인간’. 무대에서 61년을 살아온 이호재(83)는 ‘대단한’ 배우들과의 만남에 이렇게 말했다.

전무송(83), 박정자(82), 손숙(80), 김재건(77), 정동환(75), 김성녀(74), 남명렬(65), 박지일(64)…. 이름만 들어도 배우들의 면면이 쟁쟁하다. 무대 경력 60년을 넘나드는 ‘연극계 전설’부터 연극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2세대 K-팝 그룹 f(x) 출신 루나(31)까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 24명이 한 편의 연극을 위해 뭉쳤다.

개막까지 33일을 앞둔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햄릿’ 제작발표회는 이 배우들의 자리 배치부터 화제였다. 배우와 창작진(손진책 연출가,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을 포함해 25명이 참석, 총 세 줄로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배역과 연차에 따라 첫 줄은 ‘원로’들이 차지했다. 무덤파기 역의 김재건, 유령 역의 이호재·전무송, 배우 1역의 박정자, 배우 2역의 손숙, 클로디어스 역의 정동환 등이 첫 줄에 앉을 수 있었다. 배우 경력 40년 전후의 남명렬, 박지일 등은 둘째 줄에야 앉을 수 있었다.

배우 길혜연은 “제가 올해로 환갑인데 세 번째 줄”이라며 “여기(‘햄릿’)만 오면 어려진다. 나이가 들면 연기를 할 때 책임지고 아는 척을 해야 하는데, 이 곳에선 나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 ‘햄릿’에 두 시즌 연속 출연 중이다.

같은 세 번째 줄에 앉은 전수경은 “전설의 배우인 박정자 선생님과 그 귀하다는 더블을 맡았다”고 소개했다. 만감이 교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어 “뮤지컬 1세대 배우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듣는데 셋째 줄에 앉으니 막내 기분이 들어 설렌다”며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경력 60년을 넘나드는 ‘연극계 전설’부터 연극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2세대 K-팝 그룹 f(x) 출신 루나(31)까지.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배우 24명이 연극 ‘햄릿’ 을 위해 뭉쳤다. [신시컴퍼니 제공]

신시컴퍼니의 연극 ‘햄릿’은 배삼식이 극본을, 손진책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출연 배우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햄릿을 맡았던 초연(2016)에선 9명의 중견 배우들이 함께 해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22년 재연에선 원로배우들이 조연과 앙상블을, 젊은 배우들이 주연 배우로 함께 하며 한 달간 무대에 올랐다. 총 16명의 배우가 꾸민 무대였다.

이번 시즌에도 연극계 대선배들이 조연과 앙상블로 중심을 잡아주면 젊은 배우들이 주연으로 활약한다. 루나는 오필리어 역을 맡아 원캐스트로 도전한다. 배우들은 한결같이 이번 연극 ‘햄릿’의 현장은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2022년에 이어 햄릿 역을 맡은 강필석은 “당시 처음 연습실에 왔을 때 너무나 부담이 커서 정신을 못차렸는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몰려왔다”며 “선생님들을 뵙는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필석과 함께 햄릿 역에 캐스팅된 이승주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작품이자 남자 배우라면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며 “대한민국 연극을 대표하는 역사 같은 선생님들과 한 무대를 한다는 것이 큰 영광이다.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우 박지일은 연극, 드라마, 영화를 아우르며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햄릿’은 첫 도전이다. 폴로니우스 역을 맡은 그는 “이 시대의 전설인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연습실의 분위기는 청년들과 다름 없이 열기가 뜨거워요. 호재 형, 무송이 형, 정자 누나, 숙이 누나와 오늘도 즐거운 여정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연습실에 오는 것이 무척 기쁩니다.” (박지일)

다시 돌아온 ‘햄릿’은 ‘관점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세 시즌 내내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이 작품을 ‘죽음의 인간학’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2022년의 ‘햄릿’은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2024년의 ‘햄릿’은 죽은 채로 살아있는 ‘사령’(死靈)들의 연극으로 연출했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고, 나아가 죽음을 통해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반추한다”고 말했다. 죽은 자들의 시선을 통해 살아나가야 하는 법을 고민한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손 연출가는 특히 “(햄릿은) 죽음을 맞을지언정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진짜로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작품”이라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르트르식 실존주의 원형에 따라 작품을 펼쳐보자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대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작품은 장장 3개월간(6월 9일~9월 1일·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8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나날이 치솟는 제작비, 인건비, 대관료 때문에 민간 제작사 입장에선 이러한 연극을 올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면 항상 관객이 들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공연 문화 트렌드를 만들어 최대한 객석을 채워보자는 생각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햄릿’의 공연 수익은 차범석연극재단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박 프로듀서는 “공적인 일에 헌신하고 연극계 어른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2~3년 간격으로 연극계 어른들을 모시는 좋은 연극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았다. 배우들은 내내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어려운 도전에 고마움과 박수를 보냈다. 세 시즌을 함께 한 연극계 대모 박정자도 마찬가지다.

“2년 후 이 식구들이 다시 뭉쳐 또 ‘햄릿’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시컴퍼니가 끝까지 살아남아 ‘햄릿’도 하고, ‘갈매기’도 하자고요. 셰익스피어만 하지 말고 체홉도 하고, 국립에서 못하는 걸 합시다. 그럴 때 우린 출연료 안 받아도 좋아요. (웃음)” (박정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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