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찬스'에 보고서 허위 작성
"병역기피 시도 기회 제공" 판단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서울지방병무청이 고위공직자의 청탁을 받고 자녀의 병역기피를 도운 사실이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적발됐다. 약 한 달간 13차례 청탁을 받은 서울병무청 관계자는 국외여행허가업무를 위법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공문서를 위조했다. 감사원은 당시 서울병무청장 및 병무청 과장을 병역법 위반 방조, 허위작성 공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수사요청했다.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공직비리 기동감찰 I’ 결과를 9일 공개했다. 감사원은 고위공직자의 병역 관련 비리, 공무원의 영리 행위 등을 점검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 서울병무청이 전직 금융위원장의 아들의 병역면제를 도운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전직 금융위원장의 아들인 A씨는 해외에 있으면서 ‘영주권 신청 중’이라는 사유로 귀국하지 않았다. 대신 A씨는 국외여행 기간연장허가를 두차례나 신청했는데, 서울병무청은 이를 허용하면 병역의무를 피할 것으로 보고 A씨를 고발했다.
이에 A씨는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아버지 B씨(전 금융위원장)는 서울병무청 과장 C씨와 2011년 11월부터 약 한달간 13차례에 걸쳐 “이의신청을 인용해주고, 고발 취하를 부탁한다”고 청탁했다.
이에 과장 C씨는 실무자들의 이의신청 인용 반대에도 검토보고서에 허위사실 등을 직원 몰래 작성하는 등 불법을 저질렀다. 또 서울지방병무청장 D에게 보고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B씨에게 이를 상세히 전달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영주권을 신청해 둔 상태에서 미국을 떠나면 영주권 신청 자체가 무효화되고 재입국할 수 없게 된다’, ‘고발이 취하되지 않으면 미국으로 재출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담겼다. 또 본인 의사가 아닌 아버지 B가 “입영의사가 있다”고 주장한 것만으로 처분이 취소됐다.
여기에 서울병무청장 D씨 또한 “이런 사람이 영주권을 취득하면 국외이주사유로 허가신청하니 안된다”고 부결해놓고도, 2022년 이의신청 인용문서를 그대로 결재, 고발을 취하했다.
서울병무청의 ‘도움’으로 A씨의 국외여행허가 의무위반은 없던 것처럼 삭제됐다. A씨는 2022년 1월 입국 뒤 2주 후 미국으로 다시 출국한 뒤, 2월에 LA총영사관에 해외이주신고를 했다. 이를 근거로 ‘국외이주 목적의 기간연장 허가(2029년 12월 31일까지, 37세)’를 신청해 사실상 병역면제를 시도하는 등 현재까지도 귀국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병무청장 D씨와 과장 C씨가 A의 국외여행허가 의무위반을 법적근거 없이 허용, 고발을 취하했다”며 “재차 병역기피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고발취하에 따라 2021년도 병역의무 기피자 공개 대상에서도 A씨가 제외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감사원은 병무청장에게 D씨에 대해서는 징계(경징계 이상)를 요구하고, 2022년 2월 퇴직한 C씨에 대해서는 인사자료로 통보를 조치했다. 앞서 감사원은 2023년 말 두 사람에 대해 병역법 위반 방조 및 허위작성 공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수사요청했다. 아버지 B씨에 대해서도 청탁금지법 위반을 근거로 수사참고자료로 송부했다.
아울러 감사원은 특허청 H 서기관이 영리목적으로 자신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표전문기관을 동생 명의로 설립한 사실을 적발했다. 해당 서기관은 사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특허청 자체조사에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이를 방해했다.
이에 감사원은 특허청장에게 H서기관의 징계(해임) 요구하고, 해당 기관을 취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이밖에도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 일자리사업 인건비, 국내여비 등을 편취․횡령한 관련자 3명에 대하여 징계 요구를 했다. 또 3개 지자체 담당자들이 불법으로 편취한 3억9000여만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 고발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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