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기술패권서 ‘TSMC’ 대만 모델 제시
융합·미래지향적 법 연구 없다면 내리막길
막대한 보조금 美中 대응 산업정책 강조
12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에서 열린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 주최 ‘미래리더스포럼’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강연하고 있다. 안 의원은 “융합 연구를 활발하게 할 수 있고 미래 지향적인 법을 연구하는 나라는 앞으로 발전할 것인 반면, 융합 연구가 제대로 안되거나 과거 지향적 법에만 집착하는 나라들은 미래가 암울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아직 후자에 속해 이걸 신속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내려갈 길만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상섭 기자 |
“미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패권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도, 중국도 모두 필요한 최첨단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안보까지 보장 받는 길이다.”
22대 국회 4선에 오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경기 성남분당갑)은 1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헤럴드경제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공동주최로 열린 ‘미래리더스포럼’ 초청 강연에서 “과학기술 패권을 지닌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며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패권 경쟁 속에 한국의 미래 생존전략을 제시했다.
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지낸 안 의원은 “이전에는 외교와 과학기술과 경제, 안보가 서로 다른 분야였다. 국회 상임위도 다 다르다”며 “근데 제가 지난 2년 동안 외통위에서 목격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이 네 가지가 따로 떨어진 게 아니고 과학기술이 곧 외교고, 안보고, 경제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들이 쫓아가지 못하는 최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는 안보까지도 보장되는 상황”이라며 “다른 나라가 보유하지 못한 최첨단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보적 관점에서도 정말 필수고, 유일한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을 대한민국의 경제·외교·안보의 모델로 제시했다. 안 의원은 “20년 전만 해도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다면 미국이 가만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며 “하지만 지금 대만은 TSMC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운드리를 갖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국은 갖고 있는 모든 무기를 동원해서 중국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과학기술 패권전쟁은 안 의원이 이날 강연에서 꼽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3대 패러다임’의 키워드 중 하나다. 안 의원은 또 다른 키워드로 ‘융합’을 언급하며 “(분야 간 융합으로) 21세기에 새로운 분야들이 생기면서 여러 변화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시로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개발된 ‘mRNA 백신’을 언급했다. 안 의원은 “반도체에서나 쓰던 나노테크놀로지(나노기술·Nano-technology)와 바이오테크놀로지(생명공학·Bio-technology)가 융합한 결과”라며 “융합연구로 인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어 융합연구를 뒷받침할 미래지향적 법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 의원은 “백신 개발 논의 당시 미국 정부는 걸림돌이 될 만한 규제를 우선적으로 살펴서 혁파했다”며 “백신 임상1상과 임상2상을 동시에 시작해도 좋다고 해서 (개발 기간을) 몇 달이나 줄였다. 백신이 만들어지기도 훨씬 전에 고속도로를 닦아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융합연구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나라, 미래지향적인 법을 연구하는 나라는 앞으로 발전할 것이고, 융합연구가 제대로 안 되거나 여전히 과거지향적인 법에만 집착하는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교훈을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행하게도 현재 대한민국은 후자에 속한다”며 “이걸 고치지 않으면 지금이 대한민국의 정점이고, 앞으로 내려갈 길만 남아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이는 패권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부 차원의 산업정책 발굴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안 의원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중국에 따라잡히는 와중에 다른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박정희 대통령 때는 우리가 먼저 산업정책을 써서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에 우리는 산업정책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산업정책을 쓰고 있다”며 “우리는 뭐하고 있는 것인가. 더 강력한 산업정책을 써야 살아남는 시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안 의원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에게 ‘페이스메이커 리더십(pace-maker leadership)’을 요구했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선수나 참가자들을 돕는 조력자다. 안 의원은 “구성원이 자기 일을 하고, 리더가 앞에서 수레를 끄는 게 20세기의 좋은 리더십이라면, 복잡한 현대사회의 리더는 앞이 아니라 뒤에서 수레를 밀어줘야 한다”며 페이스메이커 리더십의 예시로 2011년 5월 미국 정부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백악관 상황실 사진을 소개했다. 해당 사진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전을 지휘한 참모에게 중앙 상석을 내어주고, 자신은 구석에 앉았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권력이 아닌 전문성에 맡긴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고 안 의원은 설명했다.
나아가 인공지능(AI) 분야 지원책과 관련해서는 “인문학에 투자해서 콘텐츠를 많이 생성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안 의원은 “(AI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는 건 기술이 앞서서가 아닌, 콘텐츠가 앞섰기 때문”이라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한국 고유의 콘텐츠 창작의 근간이 될 연구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봤다. 안 의원은 “조선왕조실록이 번역되자 영화 ‘왕의 남자’가 만들어지고 TV드라마 ‘대장금’이 만들어졌다”며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문학 투자를 힘주어 말했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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