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외교부 서로 ‘경고’…러 “제3국 겨냥 아냐”
루덴코 러 차관, 이도훈 주러시아 한국대사 면담
러, ‘초치’ 용어 사용 안해…韓 “대화 지속하기로”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이 21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서울 종로 외교부 청사로 초치했다. [외교부 제공]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북러가 준동맹 수준의 신조약을 맺은 이후 한러 양국이 ‘경고’를 주고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외교적 대화를 시작했다. 양국이 물러설 수 없는 ‘레드라인’을 확인하면서도 관리하는 수순으로 접어들지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27일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에 대응해 북러 간 무기운송, 대북 정제유 반입 및 북한 핵.미사일 개발 등 불법행위에 관여한 러시아와 북한 및 제3국 기관 5개, 선박 4척, 개인 8명을 7월1일자로 대북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20일 발표한 대응조치로,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러시아 및 제3국 선사인 ▷트랜스모플롯(Transmorflot LLC) ▷엠 리징(M Leasing LLC) ▷이벡스 쉬핑(IBEX Shipping Inc)은 각 선사가 소유한 선박들이 다량의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와 북한을 오가며 군수물자 운송에 관여했다.
남오세티아 지역에 소재한 유로마켓(Euromarket)은 러시아산 정제유를 북한에 판매하는 데 관여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운용을 담당하는 기관인 미사일 총국은 핵 탑재 미사일 개발·생산에 관여해 이번 독자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독자제재 대상에 포함된 러시아 선박 ▷패트리어트(PATRIOT)호 ▷넵튠(NEPTUN)호 ▷벨라(BELLA)호 ▷보가티(BOGATYR)호 등 4척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해 북한 선박과의 해상환적을 통해 북한에 유류를 공급하는 데 관여해왔다,
제재대상인 개인 8명은 모두 북한 국적으로, 한금복과 김창록은 미사일총국 산하 연구소에서 미사일 개발에 관여했다. 최철웅과 마철완은 미사일총국 산하 붉은기중대 소속으로 미사일 운용에 관여했고, 특히 최철웅은 작년 9월, 우주개발국 설계단장으로 가장해 김정은의 방러 일정을 수행했다.
류상훈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총국장으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관여해왔으며, 2023년 11월 정찰위성 발사를 총괄했다. 방현철, 하정국, 조태철은 국방과학원 산하 탄도미사일을 연구하는 6.28 연구소에서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여해왔다.
러시아는 북러 조약체결에 대한 대응 조치를 우리 정부가 밝힌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재검토’에 대해 강하게 반발함과 동시에 수위조절에도 나섰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한국의 성급한 조치에 대해 경고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는 한국 무기와 군사장비가 러시아 영토 공격과 평화로운 민간인 살해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신(新)나치’로 넘어가는 것을 무관심하게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성명을 통해 “북러 신조약은 동북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안보 불가분 원칙에 기반해 이 지역에서 힘의 균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핵 수단 사용을 포함한 한반도 전쟁 재발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 체제 구축의 기반을 놓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조약은 서방식 군사동맹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며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러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러시아 측이 실수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며 “러시아 측이 북한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안보리 상임이사국답게 처신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동안 러시아측에 밝혔던 정부 입장 수위를 고려할 때 한층 강경한 톤이다.
다만 한러 외교 당국자도 만나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텄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아시아태평양차관은 26일 외무부 청사에서 이도훈 주러시아 한국대사를 면담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번 면담에서) 한국 당국에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촉발하는 대결적인 정책을 재검토하고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와 안정, 화해를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길을 택하기를 촉구했다”며 “회담에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건설적 협력관계를 파괴한 책임이 한국의 현 지도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는 “이 대사는 러·북 간 조약에 대한 우리의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협력도 우리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러측의 분명한 설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측은 이번 면담에 대해 외교적 항의의 성격인 ‘초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21일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한 바 있다. 우리 외교부는 “양측은 이번 방북 결과 및 북러 신조약과 관련해 이번 면담을 기초로 필요한 대화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