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하순엔 유엔총회…한미일 공조 과시
국내 사도광산·친일 발언 논란…외교적 부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퇴임을 한 달여 앞둔 내달 초 방한을 추진하고 있다. 광복절 전후로 불거진 친일 논란과 강제노동의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 국내 여론이 민감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 카드에는 양국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다. 우리 정부는 한일 정상 간 친분을 과시하는 의미를 넘어 ‘굴욕 외교’ 비판을 타개할 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퇴임 한 달 앞두고 방한 의사 표명=대통령실과 외교가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퇴진을 결정하기 이전부터 방한 의사를 표명해 왔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기시다 총리의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결정 이전부터 일본측이 총리의 방한 의사를 표명해왔고, 불출마 발표 이후에도 관련 논의가 있어왔으나,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3자 해법안’을 마련한 직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양자 차원에서 일본을 방문했다. 이후 기시다 총리가 같은해 5월 방한하며 양국 간 ‘셔틀외교’가 복원됐다. 이후 양 정상은 다자회의 등을 계기로 소통했고,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취임 후 두 번째 방한했다.
▶방한·방일 추진…‘한미일 협력’ 성과 과시=양 정상 간 상호 양자 방문의 성격이라면 윤 대통령이 방일해야 하는 수순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먼저 방한 의사를 표명해 왔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대의 낮은 지지율에 고전을 면하지 못한 기시다 총리는 지난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에는 한국 정부의 동의로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숙원을 이뤘다.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최대 외교 치적으로 꼽아온 한일 관계 복원 등 재임 기간 이룬 외교적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14일 퇴진 기자회견에서 재임 3년간 주요 성과로 ‘한일 관계 개선’과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를 꼽았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내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퇴임 전 한국과 미국을 모두 방문해 ‘한미일 3각 협력’ 성과를 강조하고, 차기 총리에게도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도 담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가는 것을 고려할 때 한미일 공조 체제 강화를 자신의 외교적인 레거시로 생각하고, 이러한 노선이 지속되길 바란다는 당부를 차기 총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상치 않은 국내 여론…친분 과시 넘어 성과 낼 수 있나=윤 대통령은 “한일 간 셔틀외교 차원에서 언제든 기시다 총리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가 양자 차원에서 두 번 연속 방한하는 것은 형식상으로는 호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다만 광복절을 전후로 악화된 국내 여론이 가장 큰 변수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우리 정부가 동의한 데 대한 지적이 나왔고, 조선인 노동자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됐다는 표기가 분명하지 않아 ‘외교실패’라는 비판도 있다.
광복절을 전후로 뉴라이트로 지목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은 정부의 역사관 논쟁으로 불거졌다. 우리에게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 기시다 총리 등 지도급 인사들은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를 내거나 참배했다.
최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6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또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 엄중하게 따지고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야권에서는 연일 ‘친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양 정상 간 친분을 과시하는 것 이외에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분명한 입장을 받아내는 등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자칫하면 민감한 여론에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훈 K-정책플랫폼 국제전략위원장은 “심상치 않은 국내 여론을 잘 고려해야 한다”며 “한미일 협력에 도장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부가 바뀌면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