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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명감 생겨” 손가락질 받던 고졸 청년, 직업병 전문 노무사 됐다[우리사회 레버넌트]
직장서 ‘고졸’ 손가락질에 노동 전문가 결심
은퇴 중장년 직업성 질병 보상 전문 노무사
철도 전기공 ‘난청’ 인정에 수천만원 보상 받기도
“한국 직업병 보상 체계 미흡한 점 많아”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문성근 노무사가 24일 오전 서울 금천구 노무법인 ‘안정’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고졸 새○, 저거.” 24살에 처음 취업한 직장에서의 한 회의시간, 문성근(32) 씨에게 이런 말이 꽂혔다. 원탁형 테이블에 모여 앉은 직원 10여 명의 시선이 문씨를 향했다. 문씨를 괴롭게 한 건 말보다도, 이런 무심한 시선이었다. 문씨는 “어린 나이였어서 대응 방법을 몰랐다. 항의도 한 번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가혹한 ‘고졸’ 낙인에 노무사 결심

결국 문씨는 1년 3개월 만에 이 직장을 나왔다. 이 기간, 문씨는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받게 되는 차별을 피부로 느꼈다. 문씨는 “어떤 물건을 챙기지 않았다거나, 사소한 업무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지적을 당할 때 유독 나에게는 ‘고졸’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문씨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문씨는 “고졸이라는 이야기를 자꾸 듣다 보니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력 안 보는 전문 자격증’. 이 무렵 문씨는 퇴근하면 이렇게 인터넷에 검색을 하곤 했다. 그러던 문씨의 눈에 ‘노무사’라는 단어가 걸렸다. 직장을 퇴사하고 꼬박 3년 뒤, 문씨는 결국 노무사가 됐다.

‘직업병’ 보상 전문…은퇴 중·장년 수천만원 보상 도와
문성근 노무사. 임세준 기자

문씨는 ‘직업병’ 보상을 전문으로 하는 노무법인 ‘안정’을 운영하고 있다. 산업재해(산재) 분야가 아니라 직업병만을 전문으로 하는 노무법인은 이곳이 유일하다. 노무법인은 노무사 수습 기간 6개월을 거친 뒤인 지난 2022년 곧바로 개업했다. 문씨는 “주도적으로 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문씨를 찾는 고객 연령대는 주로 중‧장년층이다. 이중에서도 은퇴 후 직업성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질병과 이들이 종사했던 직업 간 연관성을 찾아 국가로부터 산업재해 보상을 받게 해주는 것이 문씨의 일이다. 보상금은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른다. 개업 이래 현재까지 250여 명이 직업병 승인을 받았고, 현재는 500여명이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문씨는 “노화에 따른 개인적인 질병인지, 정말 직업병인지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관건이라 성공률은 50% 정도”라고 말했다.

직업과 질병의 인과관계는 개인이 혼자 알기 어려운 영역이다. 예컨대 15년간 철도 회사에서 전기 배선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을 했던 한 70대 남성은 ‘소음성 난청’을 직업병으로 인정 받았다. 문씨는 “업무 시간 동안 기차가 지나가거나, 정차해 있으면서 들리는 소음이 난청을 일으킬 수 있는 해외 논문과 연구 자료를 종합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봉사활동에서 우연히 만난 것을 계기로 문씨가 먼저 보상 신청을 권유했던 게 시작이었다.

최근에는 직업병 인정을 받은 이들의 지인이 서로의 소개로 문씨를 찾는 경우가 많다. 건설업이나 가공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주로 반복된 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미세먼지로 인한 폐 질환, 소음으로 인한 난청 등이 많다.

육체노동뿐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직업병을 인정 받은 사례가 있다. 한 판매 대리점에서 일하던 과정에서 고객으로부터 들은 폭언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이로 인한 뇌질환을 인정 받은 경우다. 정신의학과에 방문한 기록이나 당시 근무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 등이 입증 자료가 됐다.

“한국 직업병 보상, 갈 길 멀어…사명감 생겨”

수많은 이들이 문씨를 거쳐갔지만, 한국의 직업병 보상 체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직업병 인정은 법률적 검토와 의학적 검토가 동시에 이뤄진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업병 여부를 판정하는 질병판정위원회 대부분은 의료계 인사라 법률 부분에 대한 검토가 소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근로복지공단은 ‘근골격계 다빈도 상병 직종 정의서’, 다시 말해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직종의 하나로 건설업 ‘형틀목공’을 정의하고 있다. 작업 과정에서 취해야 하는 여러 자세가 근육에 부담을 주기 쉽다는 게 이유다. ‘형틀목공’이란 콘크리트 타설 또는 흙막이 공사를 위하여 형틀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무릎 통증으로 수년간 치료를 받아온 한 남성도 최근 문씨를 찾아왔지만, 이 같은 이유로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신체부담이 높고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작 질병판정위원회 위원 7명은 모두 이 남성의 무릎 관절염에 대해 직업병 ‘불인정’ 판정을 내렸다. 근무 시간이 적고 증상도 심하지 않아 질병과 업무 간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문씨는 “독일의 경우 산재보험법에서 하루 한 시간 이상, 최소 1만3000시간 이상 무릎에 부담이 되는 업무를 수행했다면 관절염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덴마크에서도 20~25년간의 노출기간, 매일 3~4시간 이상의 작업 시간이 있다면 관절염에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남성은 직업병 불승인 판정에 불복해 행정 심판을 진행 중이다.

향후 노인 복지 및 실버 산업로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게 문씨의 계획이다. 그는 “원래 사명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는데, 중장년 분들에 대한 일을 하다보니 노인 복지 차원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문성근 노무사. 임세준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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