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신도 있고
이번 역할 마음에 들어
이미지 굳어졌지만
아직 보여줄것 많아
자신이 없진 않아요
“제가 뭐 어디 가겠어요? 있는 그대로 사는 거죠. 길 가도 아직 못 알아보니….”
배우 송새벽(32), 그를 만나면 누구나 웃음부터 터뜨린다. 그가 영화 입문 2년여 만에 덜컥 주연을 꿰찬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첫 장면도 마찬가지다. 극중 1980년대 말 제대하는 그는 부대를 뒤로 하고 양 옆의 보초를 향해 슬쩍 눈길을 주며 지나가는 말투로 “욕봐라~잉” 하며 걸어나온다. 웃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관객들에겐 그대로 ‘폭탄’이다.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무심한 표정, 그로 인해 삐질삐질 터지는 관객의 웃음보, 그것이야말로 지금 송새벽이 한국영화에서 존재하고 박수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전라도’라면 치를 떠는 경상도 집안에 사위로 들어가기 위한 전라도 청년의 결혼 대작전을 그린 ‘위험한 상견례’는 송새벽의 장기를 백분 활용한 작품이다.
“저는 그대로지만 잠깐 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주연을 해서 좋았다고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동안 한두 작품 주연으로 제안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전북 군산 출신인 그가 지역 극단을 거쳐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중 봉준호 감독의 눈에 띄어 지난 2009년 ‘마더’에 출연한 이후 지난해엔 정말 다시 오기 어려울 격변기를 겪었다. ‘방자전’에서 어눌한 말투로 변태적 성적 행각을 벌이는 변사또로 출연하면서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부당거래’ ‘시라노연애조작단’ 등으로 인기가도를 이어갔다. 지난해 말 거의 모든 영화제의 신인상 혹은 조연상을 싹쓸이하다시피했다. 이동통신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SNS 서비스 등 TV CF도 2편이나 찍었다.
“내가 광고를 찍다니…신기했죠. 요 몇 달 동안 출연료로 번 돈이 연극에서 몇 년간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걸요. 연봉 100만원일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송새벽은 여전히 서울 쌍문동의 전셋집에 산다. 차도 없다. 말끝에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는 자취집이 바로 옆에 있으니 차가 필요없었고, 이제는 중고차라도 하나 살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는 ‘변태찌질이’나 ‘여자 등쳐 먹거나 배신 때리는’ 역할이었죠.”
송새벽은 ‘위험한 상견례’에서 맡은 역할이 이제까지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변태도 아니고 자기 소신도 있으며 한 여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 인물로 직업도 순정만화작가”라며 짐짓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실제 말투나 억양, “클클클” “하하하” 웃음까지 여러모로 그가 극중에서 보였던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일련의 출연작에서 그는 대부분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했고, 충격적인 내용을 무표정하게 내뱉는 코믹 연기가 발군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식상해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송새벽은 “자신이 없지는 않다”며 특유의 어법으로 대답했다.
“사실 영화 쪽으로 오면서 한 이미지가 강조된 것이지 무대에서 공연해왔던 작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보여드릴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부러 한 색깔을 고집하거나 억지로 다른 이미지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인연이 왔을 때 최선을 다할 뿐이죠. 산너머 만나는 또 다른 산에만 집중하면 되지요.”
그는 “예전에는 무대 위, 카메라 앞에서만 정답을 보여주면 된다고 여겼지만 이제 그 바깥에서도 똑바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관객들에게 다 들통날 것”이라는 각오로 인터뷰를 맺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