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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음악, 소통 방식 변화를 모색할때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음악시장 규모가 음반시장을 누른 건 2003년부터였다. 가수와 음악제작자는 음반시대에서 음원시대로 전환된 음악 소비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강력한 팬덤을 지닌 빅뱅도 최근 내놓은 ‘투나잇’의 미니 4집 판매량이 10만장을 겨우 넘었을 정도다. 그러니 정규앨범 외에도 미니앨범, 리패키지 음반, 디지털 싱글 등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음악 소통방식의 변화를 모색할 때다. 요즘 음원 차트가 변화 모색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해준다. 멜론 등 음원 차트에서는 윤도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록버전으로 부른 80년대 노래 ‘나 항상 그대를’이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소라, 박정현도 얼마 전 1위 다툼을 벌였고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는 7년 만에 KBS ‘뮤직뱅크’ 차트에 재진입했다. 아이돌의 댄스와 발라드 위주로 소비되던 음원차트가 갑자기 춘추전국시대가 된 기분이다. 이는 음악 소비의 혁명 같은 일이다.

음악프로그램은 1~2주 단위로 1위 곡이 바뀌고 1등을 했던 곡도 한 달만 지나면 방송을 탈 수 없다. 음악소비 주기가 짧아지면서 좋은 노래도 빛을 못 보고, 좋은 노래를 선별하는 안목도 길러지지 않는 음악환경이다. 명곡인데도 빛을 못 보는 노래들이 늘어난다. 김건모 이소라 박정현 조성모 김현정의 약화는 대중의 취향을 못 맞춘 부분도 있지만 이런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당연히 제작자들은 들을 만한 뮤지션의 음악보다는 되는 음악, 즉 노래 되고 춤 되고 그림 되는 아이돌의 ‘노는 음악’을 내놓기 마련이다. 몇 년 사이에 아이돌 가수들이 넘쳐난 것은 이런 음악환경 때문이었다. 수많은 걸그룹들이 1부, 2부 리그를 형성한 가운데 올 상반기에만 5~6팀의 걸그룹이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 흐름은 당장 끊길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이 너무 많이 나왔고, 전자음으로 떡칠한 사운드의 향연은 청각을 자극하지만 듣고 나면 공허함도 남기기에 감동과 여운 있는 음악을 듣고 싶은 욕구는 꿈틀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전환, 일렉트로닉 디지털 사운드에서 어쿠스틱 아날로그 사운드로의 전환은 필연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의 기폭제가 이미 나타났다. 하나는 60, 70년대 포크음악을 하던 세시봉 친구들의 부활이고 또 하나는 가창력을 갖춘 기성가수 7명을 재활용시키고 있는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가 3회에서 꼴찌한 김건모를 탈락시키지 않고 재도전 기회를 줘 룰을 깨뜨린 것은 제작진의 결정적 실수다. 서바이벌 형식을 갖춘 이 프로그램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려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팬 확보를 고민해야 하는 밀리언셀러 가수에게 ‘나는 가수다’는 좋은 기회다. 노래를 부를 기회를 박탈당한 가수들에게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고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찌든 대중에게는 새롭게 귀를 정화시켜주기 때문에 좋다. 현장에서 7명의 라이브 음악을 생생하게 들어본 평가단은 감동을 연발한다. 7명의 가수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아이돌의 춤과 노래가 왜소해 보인다는 반응도 나온다. 


알렉스가 2008년 ‘우리결혼했어요’에서 가상아내인 신애를 향해 부른 러브홀릭의 ‘화분’이 음원차트를 장악하며 크게 히트했다. 성시경은 이런 현상을 두고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못 했지만 소통 방식만 잘 잡는다면 새롭게 조명될 노래들이 많다”면서 “요즘 음악환경에서는 스토리가 있으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신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로맨틱 가이 알렉스는 남성들의 공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뚜렷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노래를 하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의 실제 모습을 훨씬 더 다차원적으로 조망함으로써 과거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과는 다른, 절박함이 가미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고, 이 과정에서 스토리텔링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 ‘영계백숙’과 ‘냉면’이 뜬 것과 윤종신이 불러 히트하지 못한 ‘본능적으로’를 ‘슈퍼스타K2’에서 강승윤이 불러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가수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음악프로그램에 10번 출연하는 것보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의 BGM으로 한 번 깔리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고, ‘우리 결혼했어요’에 들어가고 싶어 대기하는 남녀 아이돌 가수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음악 소비환경의 변화를 실감나게 해준다.

이제 음원차트에서 바람을 일으키려면 일단 예능이건 드라마건 콘텐츠를 띄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정현과 이소라는 이전에도 지상파의 심야 라이브 음악쇼에 나와 자신의 노래를 간간이 불렀다. 하지만 노래 참 잘한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주말 저녁에 방송되는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서바이벌 형식으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자 큰 바람을 몰고 왔다. 이런 현상을 두고 가요계에선 서글픈 현실이라는 말도 하고, ‘나도 가수다’에 대해 이미 검증된 가수를 수직으로 서열화시키는 방식의 무례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바뀐 음악환경에선 가수도 새로운 소통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다가는 ‘현재’의 가수가 되지 못하고 ‘과거’의 가수로 머무를지도 모른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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