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와 영화배우 리처드 버튼은 두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 스토리로 세계팬들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로마 촬영 세트장에서였다. 첫 눈에 반한 사랑은 불같은 사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있었다. 언론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황청이 직접 나서서 비난하기도 했다.
이미 타오르기 시작한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64년 결혼해 1974년까지 1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첫 번째 이혼, 다음해인 1975년10월 재결합했으나 이듬해 7월 버튼의 알코올 중독으로 두 사람은 다시 파경을 맞았다.
테일러는 생전 리처드 버튼과의 만남을 “로마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리는 언제나 미칠듯 강력한 사랑에 빠졌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영화 '신부의 아버지' 스틸컷 |
그랬다. 테일러와 버튼은 두번의 결혼과 파경으로 인연을 끝냈지만 “내가 죽으면 전 남편인 리처드 버튼의 고향에 뿌려지길 원한다”고 했을 만큼 버튼은 테일러의 특별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최근 공개된 연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연애편지가 공개된 것은 테일러가 카슈너와 셰넨버그와 공동 저술한 책 ‘격렬한 사랑:엘리자베스 테일러,리처드 버튼 그리고 세기의 사랑’ 을 통해서다.
공개된 연서에서는 버튼은 테일러를 “헛소리 바보”라든가 “나의 멍청이”라고 불렀다. 초기에 받은 편지에는 “당신이 나를 버리면 죽어버릴거야, 당신 없는 삶은 없어”라며 노골적으로 감정을 노출했다. 배우로서의 테일러에 대해서는 “당신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배우다. 특출한 미모까지 겸비해 당신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고 뜨거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3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화려한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테일러의 대변인 샐리 모리슨은 “고인이 LA의 시더-시나이 병원에서 오늘 평화롭게 숨졌다”면서 “그녀의 모든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최근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해 왔지만 상태가 안정적이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테일러는 지난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 증상으로 지난달 이 병원에 입원해 그동안 6주 가량 치료를 받아왔으며 그 이전인1997년에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2009년에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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