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슬픔에서 나오지, 쾌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인간이 가장 밑바닥에 내던져졌을 때 비로소 가장 진한 사랑, 증오, 고독이 나오게 돼 있다.”
27일 종영한 50부작 MBC 주말극 ‘욕망의 불꽃’ 정하연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욕망의 불꽃’에는 주인공 나영(신은경 분)이 욕망의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출생의 비밀은 기본이고 뺑소니 살인, 낙태, 집단구타, 강간 등 자극적인 설정이 대거 담겨 있었다. 초반에는 막장드라마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욕망의 불꽃’은 탄탄한 구성으로 캐릭터에 설득력과 개연성을 부여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어떤 악행과 조작도 서슴지 않는 나영의 탐욕 뒤에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족사와 애정 결핍이 숨어 있었다.
최종회에서 나영의 남편 영민(조민기 분)은 아버지가 유언장에서 지정한 승계자 명단에 있던 자신의 이름 대신 작은 형 영준의 이름을 불러 후계자의 길을 포기했다. 나영에게는 “당신을 찾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욕망을 멈추게 해 잃어버린 가족을 찾게 된 계기였다.
물질적 성공이 행복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서 나영이 태진에게 다시 유언장을 써 달라고 하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태진의 말에 허탈하면서도, 독기 서린 표정을 지어 반전의 여운을 남겼다. 인간의 심리를 잘 꿰뚫어보는 정 작가가 나영이 가진 위선의 탈을 완전히 벗기는 순간 나타난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