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들 거침없는 말…말…말…
막말과 다른 대리만족 순기능 불구
인격모독·언어폭력 역기능 비판도
“무대가 우습니?” “너는 빵점이야. 아직 점수를 줄 단계가 아냐.”
심사위원의 매서운 독설이 이어진다. 이제 막 가요계에 발을 디딘 참가자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쏟아져 내린다.
‘독설의 아이콘’ 이승철이 ‘슈퍼스타K 3’(Mnet)의 심사를 앞두고 “독설의 시대는 끝났다”고 천명했지만, 나날이 불어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심사위원의 독설은 더 날카롭고 대담해진다.
3년 연속 ‘슈퍼스타K’의 심사를 맡고 있는 이승철, MBC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은 가차없는 심사평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MBC ‘우리들의 일밤-신입사원’도 “뻔한 이야기 말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라” “더 매력적인 이야기 없느냐”는 방현주 아나운서의 심사평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곧 방송될 SBS ‘기적의 오디션’, KBS ‘스타오디션’, tvN ‘코리아 갓 탤런트’와 기자를 선발하는 아리랑TV ‘컨텐던스’는 최소 1~2년간 TV 속 독설의 향연을 예고하고 있다.
TV 속 독설과 막말은 다르다. ‘막말’이 나오는대로 함부로 말하는 속어를 뜻한다면, ‘독설’은 상대방에 대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듣기 거북한 말을 뜻한다. 체면과 명분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에둘러 얘기하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독설은 일종의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준다.
그러나 독설이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인격모독적인 독설에 의해 좌절감을 느껴 더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김인혜 교수의 예처럼 그런 교육방식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식 군대문화이자 가부장적 문화가 교육방식에서도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입사원<왼쪽>, 위대한 탄생 |
심사위원의 독설은 맥락을 무시한 채 자극적인 편집을 일삼는 미디어에 의해 한층 더 폭력적으로 변모한다.
음악과 연기, 진행과 취재 등 특정 분야를 획일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유명 프로듀서나 가수, 아나운서처럼 특정 분야에서 인정받는 이들의 평가는 입문자에게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1992년 데뷔 당시 전문가로부터 혹평을 받은 서태지와아이들,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박경림 씨가 현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심사위원의 독설은 심의기관에서도 한 차례 문제가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슈퍼스타K 2’의 심사위원 현미의 발언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다.
당시 현미는 “20㎏은 아니고 한 15㎏ 정도만 빼면 될 거 같아. 피부도 예쁘니까 그럼 너무 날씬해지잖아. 우선 무다리부터 없어야 돼. 다리 이렇게 휘어서 나오면 속상하다”고 말한 바 있다.
장경식 유료방송심의팀장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독설이 최근 나타난 현상이어서 ‘슈퍼스타K’의 사례를 놓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 인권침해 등 문제 요소가 심각하다면 심의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