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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효리로 ’완판’ 행진...빅뱅으로 날개 달다
왕 역할만 도맡아 하던 남자가 현실에 발을 딛고 동분서주 뛰어다니게 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스타일이었다. ‘강력반(KBS2)’의 송일국이다. 드라마에서 송일국은 화려하게 수놓아진 용포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트를 입지도 않는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헝크러진 머리와 셔츠 안으로 그 음습한 위용을 드러내는 ‘해골’ 티셔츠였다.

송일국의 이 스타일링은 간간히 눈에 띈다. 다소 ‘정직한’ 이미지의 송일국에게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해골 프린트의 이 티셔츠는 드라마의 송일국에게 퍽 잘 어울려 이른바 ‘형사패션’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 존 바바토스(Jhon Varvatos)와 빌라봉(BILLABONG)의 의상이다.

이제 이 상징적인 ‘해골 프린트’는 강건하고 위엄있는 혹은 시크하고 딱 떨어지는 송일국도 걸칠 만큼 사랑받는 프린트가 됐다. 애초의 해골이 ‘죽음의 상징’이라는 것에 비한다면 무한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 ’죽은 자의 전성시대’라 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귀여워도 음울해도 ‘아웃사이더’의 향유물=지난 1993년으로 거슬러 가니 스크린에서는 해골들이 주인공인 영화 한 편이 관객과 조우했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었다. 팀 버튼 특유의 ‘공포 환상물’인 이 애니메이션은 잭 스켈링턴이라는 해골 주인공을 중심으로 핼러윈데이에 반란을 일으키는 괴물들의 이야기다. 꽤 귀여웠다. 그렇다고 해골이 대중화가 되지는 않았다.

이보다 이른 7, 80년대로 가보니 헤비메탈과 록의 황금기가 들어온다. 레코드점에 들어서면 벽면을 채운 포스터도 음반을 장식한 그림들도 해골 일색이다. 음악 좀 한다는 옆집의 청년들은 너나없이 머리를 기르고 블랙과 그레이의 기괴한 문양의 셔츠를 입는다. 당연히 ‘해골 프린트’다. 80년대 중후반쯤으로 보면 무난하다. 정말 빠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아웃사이더’의 것이었다. 이런 차림새의 사내들이 지나다닐때 그것은 패션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혀를 ‘끌끌’ 찰 정도의 것임에 분명했다.

메탈밴드의 전매특허였던 줄로만 알았던 해골 프린트는 이제 시간의 흐름에 맞게 다양하게 변모하기 시작한다.

▶ ‘죽은 자’의 전성시대...맥퀸으로 오다=2006년 7월 뉴욕타임스는 ‘사자(死者)의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해골’을 테마로 한 패션의 유행에 대해 짚었다.

골자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해골 패션을 내놓고 있다는 것. 이 때에 등장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살펴보니 랄프 로렌과 알렉산더 맥퀸, 릭 오웬스 등이었다. 이 때만 해도 ‘해골’은 초창기의 유행 단계를 지나있었다. 이미 식상한 것이나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 기사에서는 해골 유행의 초창기를 선도했던 루시엥 펠라 피네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해골 이미지가 상업화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면서 “어쩌면 월마트가 그들의 스마일 로고를 해골로 바꾸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며 ‘해골 이미지의 열풍’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확실히 ‘대중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국이 낳은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 1969~2010)이 존재한다.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별칭을 달고 다녔던 ‘그’다웠다. 마치 맥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스컬(skull)’은 맥퀸을 만나 화려한 색을 입었다. 핑크, 레드는 물론 반짝이는 쥬얼리도 빠지지 않았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해골들은 ‘화관’마저 소화했다. 얼굴은 기괴하나 감성은 충만했으니 이쯤하면 ‘해골의 진화’라 할 만했다. 결코 저렴하달수 없는 맥퀸의 의상과 액세서리는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양산됐다. 24시간 쇼핑타운들이 즐비한 동대문에 가면 맥퀸 스타일의 스컬룩은 이 곳 저 곳에서 눈에 띄었다.

급기야 지난 해에는 알렉산더 맥퀸의 해골 프린트 스카프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일은 대한민국 패션 디자인계의 거목 앙드레김의 빈소에서 벌어졌다. 배우 김희선의 목에 둘러진 맥퀸의 해골 문양 스카프에 대한 관심은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논란을 가중시켰으나 이는 식지 않는 ‘해골 디자인’ 열풍의 반증이기도 했다.

맥퀸으로 대중화된 해골 디자인은 패션업계에서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귀여운 마스코트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칩 먼데이(Cheap Monday)가 바로 그 예다.

▶ 이효리로 ‘완판’ 행진, 빅뱅으로 날개 달다=이제 다시 일상으로 오자. 몇 해전 ‘록시크룩’이 한반도를 강타하던 당시 거리의 곳곳에서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연예계에서는 더 화려하고 패셔너블했다.

이효리의 경우 섹시와 큐트가 접목된 해골 스타일이었다. ‘유고걸(U-GO-Girl)’로 활동할 당시 이효리는 해골 프린트의 파스텔과 캔디 컬러의 가디건과 스커트를 입고 등장했다. 인터넷은 금세 난리가 일었다. ‘핀업걸’ 스타일로 돌아온 이효리의 또 한 번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문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간 해골 프린트의 발랄한 의상들은 그녀를 다시 ’완판녀’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조금 더 아기자기한 경우도 있었다. 아디다스 오리디널스의 다지이너 콜라보레이션 라인인 Originals by Originals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제레미 스캇 (Jeremy Scott)이 사랑하는 국내 아이돌그룹 2NE1과 빅뱅이다. 멀리도 아닌 최근 가요계로 컴백한 빅뱅의 무대를 보면 자잘한 해골 무늬의 티셔츠가 눈에 띈다. 멤버들의 이미지에 맞게 색이 화려해졌다. 올 봄 트렌드를 반영하듯 애시드한 핑크나 오렌지, 옐로우 컬러가 바탕을 이루고 그 안에 옹기종기 해골들이 모여앉았다. 급기야 빅뱅은 자신들의 상징적 이미지와도 같은 ‘스컬’로 휴대폰 케이스(Incase)와 야구점퍼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해골은 ‘죽은 자’라는 고루한 인식이나 ‘아웃사이더’의 향유물이라는 음울한 가치를 벗고 톱스타와 만나 다시금 날개를 달았다. 실상 해골 디자인에 대해 이제와 ’유행의 전성기’라 하기엔 앞서도 밝혔듯 늦은 감이 있다. 다만 해골에 대한 이미지 변화는 보다 보편적 발전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존의 이미지가 주는 두려움과 음울함은 인기 스타들을 만나 귀여움을 입으면서도 스타로의 강인함을 기존의 해골 이미지에서 차용해왔다. 스타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리를 물들인 록시크룩을 입은 스트릿 패션리더들이 ’오늘만은 록스피릿’이라며 끌어안은 의도와도 다르지 않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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