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저음의 바리톤, 피아니스트 백건우(65)였다. 부인인 영화배우 윤정희(67)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게 돼 축하한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잠깐만요” 하더니 주인공을 바꿨다. 백건우-윤정희 부부는 휴대폰도 하나다. “공연차 이탈리아 제노바에 와 있다”고 부부는 말했다.
윤정희가 오는 5일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는다. 백건우(65)는 지난 2001년 같은 훈장을 받았으니 결혼 35년차인 이들은 남편과 부인이 모두 프랑스 훈장을 받는 첫 한국인 부부가 됐다. 슈발리에는 프랑스의 국가공로훈장인 ‘레종 도뇌르’의 다섯 종류 중 하나다.
윤정희는 지난 3일 전화인터뷰에서 “66년 영화를 시작했는데, 이창동 감독의 좋은 작품(‘시’)을 통해 배우로서 45년의 개인 역사가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다”며 “부부가 같이 받는 건 프랑스에서도 드문데 남편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1970년대까지 3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장식했다. 지난해 16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시’에서 평생 처음으로 시쓰기에 도전하는 가난한 노년 여성 역할을 맡아 세상의 비극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껴안으려는 한 인간의 내면적 투쟁을 뛰어난 연기로 보여줬다.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도 개봉했다.
윤정희는 “차기작 프로포즈는 많이 받지만 좋은 감독의 좋은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다”며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하는 게 꿈인데 훈장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희는 지난 1976년 결혼 이후엔 파리에 정착해 백건우의 전세계 공연 투어를 따라다니며 매니저 역할을 자처할 정도로 두 부부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예술가 부부로서 대중의 동경을 받아왔다. 인터뷰에서도 윤정희는 수상 소감이 짧았고 남편의 공연 소개엔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오는 6월엔 서울에서 리스트를 연주할 예정인데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며 “인생도 짧은데 우리 부부는 늘 함께”라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 m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