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가든’의 박상무, ‘드림하이’의 교장선생님, ‘공부의 신’의 영어교사 양선생.
틀에 박힌 인물도 그가 맡으면 색다른 매력을 입는다. 주연보다 더 돋보이는 조연, 이병준은 시놉시스를 받자마자 해당 인물에 수백가지 성격과 옷을 입혔다 벗겨본다.
그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려면 70분 드라마 중 최소 20분은 등장해야 하지만, 나처럼 회당 3~4장면 나와서는 시청자들이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불륜과 불치병이 판치는 드라마에 색다른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는 고정관념을 깨는 색다른 인물을 찾는다.
‘시크릿가든’의 박상무도 원래는 악역이었다. 그러나 첫 대본 리딩에서 그가 ‘이병준 스타일’대로 대사를 읽자마자 주위에서 큰 웃음이 터져나왔고, 묵묵히 지켜보던 감독과 작가가 넌지시 건넨 부탁이 ‘원래대로, 악역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촬영 당일 ‘원래대로’ 대사를 읊자 또 ‘컷’. 고개를 갸우뚱하던 감독은 결국 ‘이병준 스타일’을 주문했다.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 ‘스따~일’도 원래 대본에는 ‘스타일’로 적혀 있었다. 애드리브도, 작은 감탄사도 허용치 않는 김은숙 작가는 그의 ‘스따~일’에 난색을 표했지만, 시청자 호응이 워낙 뜨겁자 아예 대본에 ‘스따일’로 적어 보내주기도 했다.
교장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넥타이와 후줄근한 양복을 벗어던진 ‘드림하이’, 타이즈를 신고 춤과 노래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의 신’ 양선생도 그의 고민이 만들어낸 명품 조연들이다.
시트콤 ‘오마이갓’(SBS플러스ㆍ4월 방송 예정)과 뮤지컬 ‘뉴시저스패밀리’를 오가는 이병준. 그의 머릿속에는 오늘도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변신을 시도한다. 1990년 이래 단 한 번도 3개월 이상 쉰 적이 없다는 타고난 일벌레 이병준은 또다른 박상무와 양선생을 찾느라 “술 한 잔 마실 시간이 없다”며 아쉬운 듯 웃는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