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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열풍이다. 방송사들이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기획하거나 방영하고 있다. 주로 가수와 모델에 국한되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이 탤런트, 아나운서, 기자, 요리사, 디자이너, 화가, 오페라 가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작자 입장이건, 시청자 입장이건 여러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장점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능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예능 발전사를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와 긍정적 가치들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아직까지 한국 예능의 대세는 ‘무한도전’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 리얼 버라이어티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리얼리티 쇼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리얼리티 쇼는 일반인들이 출연한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고 심하면 방송에서 ‘욕’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너가 잘 되길 바래”,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다.

구미의 리얼리티쇼가 일반인 출연자의 사생활을 보면서 허구적 동일시를 느끼도록 유도한다면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연예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쇼 형태를 띠며 결국 공감과 감동으로 몰고간다. 그래서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제작진은 웃음 추구에서 스토리 추구형으로 점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따스하고 감동을 주고 공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다. 오디션 예능의 탄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좀 더 따뜻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리얼 예능 형태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오디션 버라이어티는 캐릭터의 특성과 관계가 부각되는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제작진이 미션을 부여한 후 참가자들의 리얼한 반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출연자들도 이를 감안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모든 게 진짜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노래를 하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의 실제 모습을 훨씬 더 다차원적으로 조망함으로써 과거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과는 다른, 절박함이 가미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건모가 꼴찌를 했을 때 나온 ‘싸한~’ 반응은 완전 리얼이다. ‘신입사원’이나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바짝 긴장해있는 참가자의 모습 또한 99.9% 진짜다.(100% 진짜는 몰래카메라밖에 없다) 리얼 예능, 날 것의 예능으로의 진화는 탈권위를 상징한다.

오디션 버라이어티는 시청자의 리얼 예능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오디션 버라이어티가 제작자들 사이에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의미도 있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워낙 견고한 아성을 구축한 데다 리얼 버라이어티라의 틀은 전혀 새롭지 못한 느낌도 주기 때문에 리얼 예능이면서도 이와는 크게 다른 오디션이라는 포맷으로 뛰어든 것이다.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인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하면서도 약자의 지위를 이용함으로써 시청포인트를 만들어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존립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건 기회를 잡기 힘든 일반인 아마추어에게도 골고루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물론 경쟁을 통해 당락이 결정되는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허각은 ‘슈퍼스타K’가 아니었다면 주류가수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시스템에서는 주인공이 되기 힘든 허각이 우승하자 시민영웅의 탄생이라며 박수를 쳐주고 대리만족까지 느꼈다. 허각의 등장을 두고 공정사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프로듀서 방시혁이 “지금 가요 엘리트들은 전부 기획사 연습생이다. ‘위대한 탄생’ 참가자들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했듯, 이들 참가자에게 오디션은 한줄기 ‘복음’일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수가 되는 소스와 루트를 다양화했다고 긍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기획사에서 트레이닝받은 사람에게만 방송 출연이 쉽게 이뤄진다면 민주화가 덜됐다는 의미다.




1970, 80년대 MBC 대학가요제가 주류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주었듯이, 오디션 프로그램도 기획사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드도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한 사회, 기득권이 강한 시스템일수록 약자의 숨통을 터주는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룰(규정)이 잘 확립되어야 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꼴찌에 머문 김건모를 탈락시키지 않고 재도전 기회를 부여해 엄청난 비난을 받는 건 한번 정한 원칙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형식을 띠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1등만 주목받는 건 아니다. 최종 우승자에게 수억원의 상금을 준다고 하지만 이는 이벤트를 위한 형식이다. ‘슈퍼스타K2’는 우승자인 허각외에도 존박, 장재인, 김그림, 이보람까지 화제가 됐고 ‘위대한 탄생’은 백청강, 이태권, 정희주 외에 ‘좀비’로 불리는 권리세와 백새은도 관심을 받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은 쌍방형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이자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다. ‘슈퍼스타K’는 심사위원의 독설까지 들어야 하는 긴장된 모습을 연출하지만 사실상 우승자의 키는 시청자가 쥐고 있다.

이승철과 윤종신이 심사하는 과정에서 참가자에게 긴장을 부여하면서 성장을 돕는다. 그게 중요한 시청포인트다. 하지만 심사위원이 내린 점수보다는 시청자 투표가 결정적으로 이들의 당락을 결정짓는다. ‘기적의 오디션’ 우승자가 출연할 수 있는 SBS 드라마 주인공도 결국 시청자들이 뽑는 셈이다. ‘위대한 탄생’TOP12에서 권리세와 황지환이 떨어진 것도 시청자 투표에 열성인 젊은 시청자의 선택이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종편채널 등 다매체 시대가 열림에 따라 ‘우리 콘텐츠’, ‘우리 출신 스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방송국마다 공채 탤런트를 뽑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잘 된다고 너도나도 뛰어들다가 아류작들만 양산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 성공 후 리얼 버라이어티도 우후죽순 생겼지만 지금은 옥석이 정리된 상태다.

‘위대한 탄생’도 처음에는 ‘슈퍼스타K’의 모방 또는 아류작이라고 불리는 여건에서 출발했지만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며 멘토시스템이라는 차별성을 부각시켜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출발을 지나치게 따지다 보면 ‘슈퍼스타K’는 아메리카 아이돌의 아류가 된다. 요는 비슷한 모티브에서 출발해도 시간이 가면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느냐다. 창의적 모방을 이뤄내면 장수 킬러 콘텐츠로 자리잡을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방송물이기 때문에 밋밋한 상황을 그대로 내보내기보다는 극적 구성을 가미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참가지의 실력과 능력보다 볼거리와 스토리, 감동거리에 집착해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미스재팬 출신 권리세와 와세다대 밴드 출신 백새은을 두 번의 패자부활이라는 무리수 끝에 최종 20인의 멘토스쿨 입학생으로 뽑은 건 아깝게 탈락하는 멘티를 구제한 것인지,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선택한 카드인지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함께 참가한 멘티들과 시청자들이 동의할 수 있게 좀 더 세련된 과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오디션 예능은 결과보다는 과정과 흐름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희노애락 감정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야 한다.

오디션 예능은 지원자의 사생활과 아픈 상처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오히려 편집을 통해 이런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아직 오디션 프로그램 초창기라 독설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독설은 갈수록 파워가 떨어질 것이다. 김구라의 독설 체감수치가 갈수록 떨어지듯이 말이다. 좀 더 있으면 강한 내용보다 부드러움속에서도 매력을 지닌 지원자(멘티)와 심사위원(멘토)이 더 각광받게 될지도 모른다.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이 강자가 되고, 지원자가 약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원자와 심사위원은 각기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일 뿐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아나운서에 도전했느냐”고 말하는 ‘신입사원’ 심사위원의 다소 고압적인 자세는 눈에 거슬린다. 3차 테스트부터는 심사를 맡은 아나운서들이 지원자와 같은 높이에서 조언하고 고민하려는 자세가 엿보여 다행이다.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원석’을 잘 다듬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력과 좌절, 실망,재 기 등의 변화를 감정이입하며 보게 된다.

따라서 지원자와 심사위원, PD의 연출까지도 진심이 있어야 한다. 결국 ‘꿈’이라는 요소와 ‘진정성’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오디션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

*월간 방송작가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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