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예능의 도움이 조금 필요한 시대
MBC ‘나는 가수다’가 5월 방송을 목표로 4월 한달 간의 재정비 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잠정 중단기가 한 달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 쉽게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김영희 PD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신정수 PD가 가수 매니저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한 달간의 재정비 기간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MBC 예능국은 ‘나가수’에 대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다.
‘나가수’가 다시 시작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가수들의 태도다. 가수들은 갖가지 여건을 들어 좌고우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눈치를 보고 있는 가수도 있다고 한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만약 그렇다면 가수들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시청자들이 ‘나가수’가 없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큰 배가 목적지를 향해 가다 암초에 부딪혀 잠시 좌초중인 상태다. 그렇다면 배를 빨리 수리해 목적지를 향하면 된다. 물론 앞으로도 또 다른 시행착오와 잡음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래 잘하는 가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시청자에게 보여줘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나가수’의 ‘큰 그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큰 그림’을 위해 부분적인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출연한 가수들을 1등부터 7등까지 등수를 매겨 꼴찌를 탈락시키는 현 포맷을 바꿀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범수는 데뷔 13년만에 처음으로 1위를 해서 좋았고, 정엽은 비록 7위로 탈락했지만 ‘나가수’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정엽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난 잃은 게 없다. 대중가수가 대중의 폭을 넓힌 것 정말 좋았다. 솔직히 얻기만 했다”고 말했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 가수들만 적극성을 보인다면 재건이 빨라진다. 물론 설문조사에서 ‘나는 가수다’에서 가장 보고 싶은 가수 1위에 오르내렸던 나얼에게 출연하라고 부담을 주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다. 필자는 브라운 아이즈가 ‘벌써 일년’을 히트시키던 2001년 나얼과 윤건을 식사자리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나얼이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을 정도로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탔던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얼은 예능적인 프로그램에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은 포맷만 정비되면 빨리 나와주었으면 한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과 제작진들의 책임이 막중해졌다. 올초 열풍을 일으킨 세시봉과 함께 ‘나는 가수다’는 음악 소비 환경을 크게 바꿔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돌 가수나 비주얼 중심 가수들의 ‘보는 음악’ 위주에서 가창력을 지닌 뮤지션 위주의 ‘듣는 음악’으로 감상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대중은 환호했고 MBC에 감사한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의 예능 생태계에서는 주말 저녁 시간대에 뮤지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버라이어티 예능의 격전지인 이 시간대에 가수들이 소중하게 얻은 기회를 반납해서는 안된다.
요즘 음악은, 미실의 표현법을 약간 빌린다면 예능의 도움이 조금 필요한 시대다. 음악이 그 자체로 소비되기보다는스토리와 서바이벌 같은 형식의 힘을 빌어 소비되는 시대에 가수들은 정체성에 관해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의 틀보다는 가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진정성이라는 점이다.
김영희 PD는 ‘나는 가수다’는 원래 시즌제로 기획됐음을 밝혔다. 김 PD는 “‘나는 가수다’는 원래 오래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시즌1은 지금 시행하고 있는 꼴찌 탈락 형태로 짧게 끝내고 시즌2, 시즌3로 이어지는 방식이었다”면서 “시즌2, 3는 포맷을 계속 바꿔 노래 부르는 환경이 달라지도록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 PD에게도 꼴찌 가수를탈락시키는 서바이벌 방식은 고육책이었다.
‘나는 가수다’는 방송에서 밀려나고 있는 뮤지션들을 재발견하는 무대다. 지금 출연하고 있는 가수뿐 아니라 노래는 잘하는데 점점 ‘과거의 가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빨리 ‘나가수’ 제작진에게 연락하는 게 개인과 음악 발전을 위한 길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