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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정적 춤 안돼”...그럼 걸그룹은?
조명이 켜지면 이제 수많은 걸그룹들은 무대 위에서 해야할 말들을 몸으로 대신한다. 보여줄 것이라고는 섹시 콘셉트의 드레스 코드와 유연한 웨이브 댄스밖에는 없어 보이는 이 곳은 마치 새벽 2시의 어느 클럽 한 가운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여기는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이다.

지난 한 주간 케이블 채널 Mnet의 ‘엠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KBS, MBC, SBS 등 공중파 3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걸그룹의 컴백무대와 데뷔무대가 이어졌다.

걸그룹들은 섹시와 함께 왔다. 파워풀한 댄스와 보이시한 이미지에 기존의 섹시함도 퍼포먼스로 승화했던 포미닛의 변신은 더 도발적이었다. 컴백 무대에서 한 뼘밖에 되지 않는 하의에 앞서 선정성 논란을 불러온 것은 ’쩍벌춤’으로 불리기 시작한 ’거울아 거울아’의 안무였다.

마이클잭슨의 ‘Dangerous’에 참여한 세계적인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가 심혈을 기울인 라니아는 애초에 ‘섹시’ 코드를 물고 들어왔으며 이들의 컴백무대에서 강력한 섹시함은 폭발했다. ‘용감한 형제’가 야심차게 키워낸 브레이브 걸스는 발레바를 이용해 과감한 안무를 선보였다. 한결같이 코드는 ’섹시’였다.

이제 ‘쩍벌춤(포미닛 ’거울아 거울아‘, 라니아 ’닥터필굿‘)’이나 ‘봉춤(브레이브걸스 ’아나요‘)’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걸그룹의 퍼포먼스는 ‘선정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논란을 가져오고 끝내는 제재대상이 됐다. 

▶ ‘의상’으로 드러내고 ‘안무’로 자극하는 걸그룹...결국 ‘제재대상’=보여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보여주겠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었다. 최근의 걸그룹이 보여주고 있는 전반적 흐름이 그렇다.

먼저 의상에 대한 논란은 흔했다. 때문에 KBS에서는 여자 가수들의 의상과 안무에 대한 제재가 꾸준했다. 성년이 되지 않은 여자가수들, 특히 걸그룹의 노출이 과한 의상 등은 보이는 족족 제재대상이 됐다. '걸그룹 선정성 규제'라는 명제 하에서였다. 티아라를 필두로 한 대부분의 걸그룹과 여자가수들은 한 번쯤 의상으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됐고 그로 인해 제재를 받게 됐다.

이번에도 제재 바람은 불어닥쳤다. 가수 보아로 인해 이름 붙여진 어감마저 자극적인 ‘쩍벌춤’은 이후 제2, 제3의 쩍벌춤에 제재 조치를 내리게 했다. 

KBS ‘뮤직뱅크’ 제작진은 “‘쩍벌춤’ 등 선정적인 안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해당 안무를 수정하지 않는 걸그룹은 오는 15일 방송부터 ‘뮤직뱅크’ 무대에 세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걸그룹 포미닛과 라니아 등은 돌아오는 음악프로그램의 무대에서는 새로운 안무로 음악팬들을 만날 계획이다. 라니아 측은 의상 역시 좀더 노출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전해왔다.

▶ ‘섹시’와 ‘귀여움’ 사이만 왕복...걸그룹의 대안은=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섹시 코드가 치고 나오자 걸그룹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더 많이 보여주는 의상을 바탕에 두고 수위높은 안무를 소스로 찍어바르기 시작했다.

청순가련형 걸그룹의 시대는 지난지 오래이며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그룹들에도 싫증나기 시작한지 한참이다. 청순이나 귀여움을 모토로 내걸지 않고 음악 안에서 스타일을 변주하는 2NE1이 아니고서야 대안은 섹시였다.

어차피 걸그룹이 섹시와 귀여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역시 오래 전부터 마찬가지였다. 이제 문제는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어떻게 보여주느냐'였다.

의상과 안무에 대한 논란이 시작될 때 항상 따라오던 것은 ‘선정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지 명제였다. 이들 걸그룹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음악 무대도 더 화려하고 세련돼졌다. 비주얼은 해외 팝스타 못지 않다“면서 걸그룹의 무한 변신을 반기는 쪽도 있다. 반면 ”해가 갈수록 더 보여주고 싶어 안달인 것 같다. 시각적으로 선정적인 무대의 가수들에게서 음악적인 무엇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가 지나치다. 미성년자들이 속한 그룹인데 지나친 상품화 아니냐“면서 ‘보기 좋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논란이 거세지고 제재가 이어지면 이제 화두는 ‘선정성’과 ‘표현의 자유’로 옮겨간다. “퍼포먼스와 의상 역시 가수가 무대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한 것을 제재하는 것은 지나치다”, “뚜렷한 기준이 없는 논란과 제재는 도리어 가수들의 창의력과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가 하면 ”10대 걸그룹이 10대가 주시청층인 음악 프로그램에서 핫팬츠를 입고 ‘쩍벌춤’과 같은 안무를 선보이는 것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미 걸그룹 시장은 포화상태에 달했으며 대중은 늘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노골적인 것은 꺼려한다. 이 점이 ’논란’을 가져오는 핵심이 됐다. 요구에 응하는 쪽은 늘 한 발 앞서 수위를 높이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이중적 잣대다. 상상력의 빈곤은 보여주는 것의 한계를 가져오기에 걸그룹들은 저마다 섹시 경쟁 일변도로 나아가게 된다. 자체정화나 양측 모두의 자성을 촉구하는 것, 논란이 일기 이전에 ’사전검열’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억지 규제 외에는 사실상 뚜렷한 대안도 분명치 않다는 점이 현실이기도 하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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