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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화>야성의 소녀킬러, 세상과 마주하다
전직 CIA요원 아버지에 의해

살인병기로 길러진 소녀

장면전환없는 롱테이크 기법

생생한 지하철 격투신 압권




한 소녀가 한 중년남자로부터 고립된 설원에서 극한의 훈련을 받는다. 살생과 방어 훈련이다. 사슴을 때려잡고 ‘원샷 원킬’의 사격연습도 필수다. 맨손부터 활, 칼, 총, 막대 등 무엇이든 치명적 무기가 된다. 어떤 순간에라도 온몸의 방어와 공격 본능을 곤두세워야 한다. 동정이나 연민, 어떤 감정도 가져선 안 된다. 이 소녀의 이름은 ‘한나’(시얼샤 로넌).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으로부터 격리돼 오직 살인병기로 키워진 소녀. 그를 훈련시킨 것은 전직 CIA요원인 아버지(에릭 바나)다. 소녀가 접한 문명이라고는 아버지가 읽어주는 책뿐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자라났으며, 누구와 친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소녀는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통째 외웠다.

이 부녀는 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살인 연습에 몰두하게 됐을까.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소녀가 완벽한 살인병기가 됐을 때, 소녀는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버튼을 누른다. 모종의 세력이 부녀의 행적을 쫓기 시작하고, 아버지와 딸은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간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고, 두 사람을 둘러쌌던 비밀이 하나 둘 드러난다. 한나는 마침내 자신의 출생에 얽힌 충격적인 음모를 알게 된다.

영화 ‘한나’는 살인병기로 키워진 16세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 스릴러 영화다. 소녀 킬러가 거대한 음모, 거대한 조직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빠르게 전개된다. 암살자로 훈련된 여죄수의 이야기를 그린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나, 킬러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레옹’이 연상되는 액션 영화다.

무엇보다 뛰어난 액션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무술감독은 맷 데이먼 주연 본 시리즈의 제프 이마다가 맡았다. 과장되고 화려한 액션보다는 절도 있고 군더더기 없는 격투신으로 리얼리티를 살렸다. 다른 것은 ‘본’ 시리즈가 빠른 장면전환(커팅)으로 속도감을 높인 반면, ‘한나’에선 롱테이크 기법이 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조 라이트 감독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수십명의 상대를 고꾸라뜨리는 격투 신을 최근 영화 중에서 “최고의 액션장면”으로 꼽았다. 역시 장면전환 없이 롱테이크로 길게 찍은 장면이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영화나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에서의 지하철 절도 장면도 조 라이트 감독이 참조한 것들이다. ‘한나’에서 에릭 바나가 지하철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소녀 한나가 싸우는 장면에서 조 라이트 감독이 언급한 작품들의 흔적이 묻어난다. 


조 라이트는 원래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솔로이스트’ 등의 로맨스 영화나 휴먼 드라마로 잘 알려진 감독이다. 이 영화 역시 액션에 방점이 찍히지만, 사회와 단절돼 살아온 한 소녀의 감성과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한나가 캠핑을 떠난 한 가족과 동승해 또래의 친구를 만나 나누는 우정이나 사춘기 특유의 호기심이 영화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얼샤 로넌은 냉혹한 킬러로서뿐 아니라 사춘기 소녀 특유의 열망이나 혼란을 잘 표현했다.

시얼샤 로넌은 국내엔 피터 잭슨 감독의 ‘러블리 본즈’로 비교적 얼굴이 익은 17세 소녀배우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톤먼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뜬 할리우드의 신성. ‘뮌헨’ ‘헐크’ ‘트로이’에서 호연을 펼친 에릭 바나 역시 묵직한 존재감과 호쾌한 액션을 보여준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케이트 블랑쳇 역시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15세 이상 관람가. 14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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