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펀치’ 전자기타 굉음 박진감 더해
‘상실의 시대’ 엔딩에 비틀스곡 삽입
올드팝서 모던록까지 OST와 조우
화려한 영상과 음악 절묘한 궁합
굉음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에 몸을 맡긴다. ‘멜랑콜리’하고 몽환적인 모던록에 취한다. 몸이 들썩이는 라틴팝, 전위적인 대중음악도 있다. 록의 향연이다. 봄 극장가엔 영화팬들뿐 아니라 록음악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이 대거 내걸렸다. 하나같이 화려한 영상과 어울린 음악들이 귀를 자극하는 영화들이다. 먼저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홍이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일본 배우 주연으로 영화화한 ‘상실의 시대’가 있다. 영화나 책이나 원제는 잘 알려진 대로 비틀스의 곡 ‘노르웨이의 숲’을 그대로 따온 작품이다. 당연히 인도의 현악기 시타르 연주로 시작하는 비틀스의 원곡이 영화 속 엔딩 크레딧에 삽입됐다.
극 중에서 ‘레이코’ 역을 맡은 일본 여배우 기리시마 레이카가 기타를 치며 이 곡을 부르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OST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은 노래 ‘Creep’이나 앨범 ‘OK computer’ 등으로 현역 최고의 록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았다. 트란 안 홍 감독은 ‘씨클로’에서 ‘Creep’을 삽입해 라디오헤드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이번 OST에서 조니 그린우드가 선택한 곡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60년대 말 결성된 독일의 전위적인 록밴드 ‘캔(CAN)’의 작품이다. ‘Mary, Mary, So Contrary’ ‘Bring Me Coffee or Tea’ ‘Don‘t Turn the Light On, Leave Me Alone’ ‘She brings the rain’ 등 4곡이 영화 속에서 연주된다. 캔은 60~70년대 주로 활동했던 밴드로 미국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프랑크 자파 등과 비견되는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사운드를 구사했다. 특히 전자음을 많이 써 영미의 록음악과 다른 지류를 형성했던 ‘크라우트록’(독일록)의 선구자 중 하나다.
대학가에 격렬한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일본의 60년대 말을 배경으로 친구ㆍ연인의 죽음을 겪은 한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 젊은 세대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고민과 혼돈을 묘사한 영화와 절묘하게 조우하는 선곡이다. 최근 정규 앨범을 발표한 라디오헤드의 이름은 일본 영화 ‘고백’에서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다시피 한 곡이 라디오헤드의 ‘Last flowers’로 기존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미발표곡이다. 피아노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 속에 보컬인 톰 요크의 음울한 미성이 강렬한 영상, 비극적인 스토리와 어울렸다. 이 영화에는 일본의 실력파 밴드인 보리스(Boris)와 일본 걸그룹 AKB48의 노래도 담겼다. 이중 보리스는 지난 1994년 결성된 일본의 3인조 록밴드로 사이키델릭, 펑크, 노이즈, 미니멀리즘 등 실험적인 록음악으로 유명하다. 몽환적이고 어두운 분위기에 육중하고 날카로운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압권이다. 5명의 여전사가 가상 현실 속에서 파격적인 액션을 펼치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써커 펀치’에는 귀에 익은 곡과 낯선 음악이 섞여 있다.
상실의 시대<왼쪽 위>, 마셰티<왼쪽 아래>, 써커펀치<오른쪽> |
유리스믹스의 ‘스위트 드림스’와 모리시의 ‘어슬립’이 주연 여배우 에밀리 브라우닝의 목소리로 연주됐고, 록밴드 퀸의 대표곡 ‘위 윌 록 유’가 리믹스 버전으로 담겼다. 아일랜드 출신의 여가수 비요크의 ‘아미 오브 미’와 미국의 펑크밴드 스컹크 아난지가 연주하는 이기 팝의 ‘서치 앤 디스트로이’도 들을 수 있다. 난도질과 총격, 누드, 섹스 등 난장 B급 액션을 보여주는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의 ‘마셰티’는 라틴록과 라틴팝의 잔치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배경으로 한 범죄물답다. 텍사스 토네이도스, 티토, 칭곤(Chingon) 등 라틴계 뮤지션들의 음악과 얼터너티브 록밴드 ‘걸 인 어 코마’의 신나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