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수가 오페라에 도전하는 tvN ‘오페라스타’는 갈수록 높아져가는 가수들의 실력과 오페라 아리아의 난이도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시청률 3%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생방송 3라운드에서 테이가 불굴의 우승후보 임정희를 2주 연속 누르고 1위의 기쁨을 누렸고, 천상지희 선데이가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이 큰 이슈가 됐다. SBS ‘기적의 오디션’도 대전 광주 부산 대구 지역의 예심 열기가 뜨겁다. 기성가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와 아나운서 오디션 프로그램인 MBC ‘신입사원’도 적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주로 가수와 모델에 국한되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이 탤런트, 아나운서, 기자, 요리사, 디자이너, 화가, 오페라 가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쏠림현상 왜?= 왜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까. 뭔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점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능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아직까지 예능의 대세는 ‘무한도전’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 리얼 버라이어티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리얼리티 쇼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서양 리얼리티 쇼는 일반인들이 출연해 서로 경쟁하고 심하면 방송에서 ‘욕’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네가 잘 되길 바라”,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다.
구미의 리얼리티쇼가 일반인 출연자의 사생활을 보면서 허구적 동일시를 느끼도록 유도한다면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연예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쇼 형태를 띠며 결국 공감과 감동으로 몰고간다. 그래서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제작진은 웃음 추구에서 스토리 추구형으로 점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따스한 감동을 주고 공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다. 오디션 예능의 탄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좀 더 따뜻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리얼 예능 형태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더 리얼한 것을 찾아서= 오디션 버라이어티는 캐릭터의 특성과 관계가 부각되는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제작진이 미션을 부여한 후 참가자들의 리얼한 반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출연자들도 이를 감안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모든 게 진짜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노래를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실제 모습을 훨씬 더 다차원적으로 조망함으로써 과거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과는 다른, 절박함이 가미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건모가 꼴찌를 했을 때 나온 ‘싸한~’ 반응은 완전 리얼이다. ‘신입사원’이나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바짝 긴장해 있는 참가자의 모습 또한 99.9% 진짜다.(100% 진짜는 몰래카메라밖에 없다) 리얼 예능, 날 것의 예능으로의 진화는 탈권위를 상징한다.
오디션 버라이어티는 시청자의 리얼 예능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무한도전’과 ‘1박2일’ ‘남자의 자격’ 등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의미도 있다.
▶오디션은 기회의 다양화, 하지만 희망만 주고 있나? = 오디션 프로그램이 존립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기회를 잡기 힘든 일반인 아마추어에게도 골고루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물론 경쟁을 통해 당락이 결정되는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허각은 ‘슈퍼스타K’가 아니었다면 주류가수가 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1970, 80년대 MBC 대학가요제가 주류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주었듯이, 오디션 프로그램도 기획사에 편입되지 못한 아웃사이더에게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한 사회, 기득권이 강한 시스템일수록 약자의 숨통을 터주는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러려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룰이 확립되어야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은 쌍방형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이자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다. ‘슈퍼스타K’는 심사위원의 독설까지 들어야 하는 긴장된 모습을 연출하지만 사실상 우승자의 키는 시청자가 쥐고 있다. 대부분 시청자 투표가 60~70%나 차지하기 때문에 시청자가 심사위원의 입김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이 제도는 승자가 실력보다 인기 위주로 뽑힐 수 있는 위험도 안고 있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종편채널 등 다매체 시대가 열림에 따라 ‘우리 콘텐츠’ ‘우리 출신 스타’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자리잡고 있다. 방송국마다 공채 탤런트를 뽑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반인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하면서도 약자의 지위를 이용함으로써 시청포인트를 만들어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기껏해야 최종 1~2인을 뽑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를 생각하며 포맷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 것도 모르고 아나운서에 도전했느냐”고 말하는 ‘신입사원’ 심사위원의 다소 고압적인 자세는 눈에 거슬렸다. 다행히 3차 테스트부터는 심사를 맡은 아나운서들이 지원자와 같은 높이에서 조언하고 고민하려는 자세가 엿보였다.
▶실력과 능력보다 스토리, 이슈에 집착하면 안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방송물이기 때문에 밋밋한 상황을 그대로 내보내기보다는 극적 구성을 가미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참가자의 실력과 능력보다 볼거리와 스토리, 감동거리에 집착해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것. 오디션 예능은 지원자의 사생활과 아픈 상처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오히려 편집을 통해 이런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원석’을 잘 다듬어 성장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력과 좌절, 실망, 심기일전, 재기 등의 변화를 감정이입하며 보게 된다. 오디션 예능은 결과보다는 과정과 흐름을 즐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로애락 감정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야 한다. 결국 ‘꿈’이라는 요소와 ‘진정성’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을 결정짓는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