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학원없던 어린시절
교육방송서 배움 갈증채워
유일한 교육공공재 EBS
사교육 근절 대안 거듭나길
내게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육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졸업한 학교에서 낡아빠진 책상 하나를 얻어왔다. 휘청대는 낡은 책상과 작은 라디오는 내 꿈을 위한 구름판이었다.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라디오 교육방송을 들으며 공부의 단맛을 느꼈고, 사교육은 꿈도 꿀 수 없던 나는 자연스레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길러나갔다.
대학 졸업 후 소원대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고, 인터넷이 없던 당시 교육방송은 수업자료의 보고였다. 지금은 책으로도 출판된 ‘신기한 스쿨버스’ 등 수많은 영상자료들을 녹화해 수업자료로 활용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쓸모없는 녹화 테이프를 버렸는데, 그 분량이 100ℓ짜리 쓰레기봉투 4개에 달했다. 그 시절의 열정이 우리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이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으리라 믿는다.
EBS는 여전히 내 든든한 동지다. ‘지식채널e’ 영상은 계발활동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3~5분 분량의 클립형 영상을 모은 ‘클립뱅크’, 내 수업을 돌아보게 하는 ‘세계의 교육현장’도 학생과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료들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영국의 BBC, ITN 같은 방송사들의 비디오 클립뱅크는 아직 초기단계인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하다. 수능방송도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유아ㆍ초등과정에서 질 좋은 클립형 영상을 생산해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 영어 과목을 비롯한 주요 과목에서 수준별로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쌍방향 소통창구도 강화해야 한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EBS가 실질적인 ‘구름판’이 될 수 있기 위해서다.
EBS 수신료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KBS 수신료 2500원 중 EBS 몫이 겨우 70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학부모에게 물어보면 ‘적어도 500원은 받고 있지 않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면 해외에서는 공영방송 수신료의 20%가량을 교육문화 채널에 배분하고 있다. 영국의 BBC는 교육문화 채널인 BBC2에 수신료의 29%를, 이웃나라 일본도 20%를 배분한다.
지난 한 해 우리나라의 총 사교육비 규모는 20조9000억원. ‘개천에서 용 난다’란 말은 이제 ‘학원에서 용 난다’는 우스갯소리로 변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아이 낳기가 두렵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벌써부터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도태되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더 탄탄한 교육 공공재가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가 TV수신료를 내는 것은 더 많은 양질의 방송 콘텐츠를 만들라는 취지다. EBS 수신료 정상화는 곧 교육방송의 정상화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로선 EBS 방송이 개천에서 용 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