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눈물의 여왕'을 사랑해주시고, 윤은성을 미워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tvN 사상 최고 시청률(24.9%)을 기록하고 종영한 '눈물의 여왕'에서 역대급 빌런 윤은성 역을 맡아 호평받은 박성훈(39)은 '핫'한 배우가 됐다.
'하나 뿐인 내편'의 장고래, '더 글로리'의 전재준, '눈물의 여왕'의 윤은성. 그는 이렇게 캐릭터로 불린다. 배우가 캐릭터로 불린다는 건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박재준'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박성훈은 "악역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어 좋다. 아버지는 무조건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악역을 그만 했으면 한다"고 했다.
악역을 하는 요령이 있을 법 했다. 눈에 힘을 빼고 말에도 힘을 뺀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뭐 하는 거야!”라면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컴퓨터로 그의 말을 받아쓰던 나는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이런 식으로 악역 연기를 해요."
광기와 결핍 사이에 있는 윤은성 캐릭터 연기법을 실제로 즉석에서 보여준 것이다. 극을 거세게 뒤흔들었던 빌런 윤은성은 퀸즈 그룹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도저급 악행을 펼쳐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총살 엔딩이 좋았어요. 뒤틀린 사랑이지만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느껴지거든요. 일생동안 해인(김지원)을 좋아했어요. 사랑을 받는 법도, 주는 법도 몰라요. 벼랑끝 몰린 사람의 선택이었죠. 그래서 은성은 죽음이 필요했다고 봐요. 감옥에 갔다 오면 은성이 이들을 또 괴롭힐 거예요."
박성훈은 전재준과 윤은성이 같은 악역이기는 하지만 다르게 접근했다고 했다. 두 캐릭터는 전사(前史) 차이가 많다. '더 글로리'의 재준은 부티, 날티에 비아냥 거리는 투였다면 '눈물의 여왕'의 윤은성은 높낮이를 줄이고 꾹 눌러 한번에 감정을 올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박성훈은 엄마 역인 이미숙과의 연기가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미숙 선배님은 가만히 서 있어도 존재감만으로 압도적이었어요.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됐어요. 자기관리는 혹독하지만, 후배들에겐 관대하며 쿨 하고 여장부 같은 멋진 모습을 지녔어요. 여러가지를 조언해줘 감사합니다."
김수현에 대한 관찰기도 섬세하다. "수현은 애절한 눈빛, 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마력, 거기에 보이스까지 가졌어요. 저보다 동생이지만 어릴 때부터 주인공을 맡아, 저보다 선배죠. 저는 연극할 때는 연극을 많이 보고 드라마 할 때는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수현이 어린 나이임에도 호평이 많아 어떤 게 좋을까 하고 봤어요. 김수현의 탁월한 연기가 보여 팬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수현과는 MBTI도 같아요. 어릴 때부터 주연을 하면서 자신을 낮춰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리더십이 있더군요."
이어 "김지원은 빈틈 없는 전교 1등 스타일, 교회 언니 스타일 같아요. 정직, 겸손, 예의 바른 친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성훈은 부잣집 아들 같은 외모와는 달리 가난한 생활을 오래 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극계에서 10년간 열심히 연기해 '대학로의 아이돌'이라는 말도 들었다.
"IMF로 가세가 기울어져 급식도 못먹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운 적도 많어요. 군대 있을 때는 휴가를 나오려고 하면 엄마가 (용돈을 줄 수 없어)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가난했어요. 반지하 집에서 싱크대까지 물이 역류해 전기 콘센트까지 닿으면 감전될까봐 가슴 졸이기도 했어요. 지상에 올라온 지도 몇년 안됐고, 학자금을 갚은 지도 얼마안돼요"
하지만 박성훈은 "가난과 자격지심이 저에게는 좋은 연기 동력으로 작용했어요. 항상 연기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사람 관찰도 많이 하면서, 같은 분야에서도 알바를 했어요. 뮤지컬 '헤드윅'에서 MD 담당을 했고, 다른 작품에서는 바람잡이 역할도 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열심히 한단계씩 쌓아나간 박성훈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유퀴즈 온더 블록'에 나왔으며, 황동혁 감독님과는 일면식도 없는데 '오징에 게임2'에 출연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월세집 탈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걸 다 이뤘다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박성훈은 왜 악역을 하면 포텐이 터질까? 이에 대해 나는 "악역처럼 생기지 않아서"라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박성훈은 "'더 글로리'의 전재준 역에 캐스팅 될 때 김은숙 작가가 '하나뿐인 내편'을 보고, 선한 얼굴을 한 사람이 악역 옷을 입으면 어떨까 하면서 역할을 제의했어요"라고 밝혔다.
박성훈은 "욕은 윤은성으로 더 많이 먹었어요. 나쁜 짓은 재준이(더 글로리)가 더 많이 한 것 같은데"라면서 "이번에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어요. 꺼져라, 지나가다 만나기만 해봐라 등등 육두문자를 쓰면서 DM으로도 보내고요. 외국인들도 보냈어요"라고 밝혔다.
김은숙, 박지은 작가중 누가 좋은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엄마냐, 아빠냐로 해주시면 안돼요. 민초파, 반민초파만 해도 논쟁이 되는데, 저는 말을 잘 듣는 편이에요. 제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작가와 연출이 원하는 바를 하자는 주의입니다."
박성훈은 '더 글로리'를 즈음해 1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이쯤 되면 워커홀릭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제가 쉬는 걸 불안해해요. 몰두할 것이 있어야 해요. 최근 의도치 않게 계속 이어져 온 면도 있어요."
박성훈은 연극에서 오랜 기간 경험하고 매체연기로 넘어왔다. 매체연기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무대에서는 발성을 확장시켜야 하죠. 연극 무대에서는 객석을 바라보는 게 클로즈업인데, 매체 연기에서는 그렇게 하면 과하게 느껴져 깍아내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모니터링도 많이 하면서..."
박성훈은 격한 신을 접했을때 연극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매체활동만 한 배우중에는 연기는 잘하는데 발산의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도 봤다고 했다. 극한의 감정에서 표현하는 훈련을 연극에서 배웠다고 했다. 또 진선규와 박해수 등 연극에서 만나 좋아하게 된 '형'들의 진지, 성실, 겸손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란다. 박성훈은 오는 6월 대학로에서 연극 '빵야'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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