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하이브와 어도어가 연일 갈등을 표출하며 싸우고 있다. 어도어에 소속된 걸그룹 뉴진스의 부모가 회사에 보낸 이메일에는 “방시혁 의장이 뉴진스의 인사도 받지 않는 등 홀대했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물론 하이브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아이돌의 부모들까지 나서면 뭔가 불길하다는 예감이 들면서도 폭로와 반박의 연속 전선 형성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만 해도 어도어는 하이브가 일과시간이 끝나고 불법적인 감사를 했다고 지적했고, 하이브는 강압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이어 하이브는 어도어와 뉴진스 스타일디렉팅 팀장 사이에서 횡령 정황이 있어 적법한 감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의 양해 하에 외부업체로부터 받은 수억원대 부당이득이 팀장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민희진 대표는 ‘역량이 높은 ‘내부’ 인재가 올린 성과 보상을 ‘외부’로부터 수취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는 관행이 아니라 불법”이라고 반박했다.
양자간의 싸움은 오는 31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와, 민희진 대표가 불법적인 경영권 찬탈과 업무상 배임이 있었는지를 다루는 법정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다. 특히 민희진 대표가 자신이 해임되는 걸 막기 위해 하이브를 상대로 냈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 심문(17일 오전) 결과도 관심거리다.
지금 상황은 두 곳에서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지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양측이 여론전으로 확산시켜 보도 전쟁을 하는 형국이다.
현재로서는 어도어의 지분 80%를 가진 하이브의 의지대로, 임시주총이 소집되면 민희진 해임안이 가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희진 대표가 진 것이 아니다. 심지어 판사가 내리는 법의 선택도 여론의 향방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민 대표의 업무상 배임이 법원에서도 확인된다면, 하이브는 유리해진다. 하이브는 주주간 계약 위반을 내세워 민 대표의 어도어 지분을 싸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형식적, 법적으로는 민희진 대표가 질 것 같은 조짐이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는 민희진 대표가 얻어낸 게 많다.
민 대표가 이 과정에서 K-팝 산업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나쁘지 않게 들린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민희진의 우군들이 많이 생겼다. 민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랜덤 카드 만들고 밀어내기 하고 이런 짓 좀 안했으면 좋겠다. 결국 팬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뉴진스는 포토카드 없이 이 성적이 나왔다"고 말한 바 있다.
얼마전 일본 도쿄 시부야 길거리에서 무더기로 버려진 세븐틴의 음반들은 민 대표가 제기한 문제들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냥 놔둬야 할 사안은 아니다.
어차피 하이브와 민희진이 싸운다면 진흙탕으로 가지 말고 문제 지적에 이은 대안 제시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산업내에서 민희진 대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공유할만한 제작자(스핀오프 혁신가)들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도 민희진 혼자 싸우는 듯한,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모양새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민희진 대표는 MZ세대를 위한 쇼 비즈니스에는 능하다. K-팝 덕후 사이트, 여초 커뮤니티, 페미니즘 사이트의 성향을 잘 알고 그들에게 먹혀들어가는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선을 나눠 저 쪽을 '개저씨'라고 한 게 임팩트를 주기는 했지만 우군 키워나가는 데에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내가 취재해보니, 민 대표가 지칭한 '개저씨' 중에는 민 대표의 주장과 논리를 공감하며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쨌든 양 측의 싸움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K-팝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다. 폭로보다는 문제 직시와 해결 방향으로 간다면, 왜곡된 음반시장을 바로잡는 계기로 작용해 의외로 K-팝 산업의 순기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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