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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축구 왜 하냐고요? 발톱 빠져도 ‘풋파민’에 짜릿해요”
창단부터 데뷔전까지 ‘FC풋옵션’ 분투기
“선배들은 풋살 안 해요?” 후배의 한마디
헤럴드경제 51년 첫 여성 풋살팀의 시작
기자협회 풋살대회는 아쉽게 탈락했지만
부상투혼으로 함께 땀 흘린 시간 소중해
헤럴드경제 여성 풋살팀 FC풋옵션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배들은 풋살 안 해요?”

제2회 기자협회 풋살대회 신청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2월 6일. 후배의 한마디가 주저하던 기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간 모르고 지냈던 선후배들을 알게 되고, 돈독해진다”는 후배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기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헤럴드경제 51년 첫 여성 풋살팀 ‘FC풋옵션’의 시작이었다.

대회 출전만이 풋살팀의 존재 이유는 아녔다. 함께 일하지 않으면 서먹하기 쉬운 동료들이 잔디 위에서 구르고 구슬땀 흘리며 ‘한 팀’이 됐다. 체력을 키운 건 덤이다.

짧고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에 비할 수 없는 ‘건강한’ 도파민이 솟구쳤다. 이른바 ‘풋파민(풋살과 도파민을 합친 신조어)’이 짜릿한 성취감과 보상을 안겨줬다. 상대적으로 아마추어 팀스포츠가 활발하지 않던 여성들 사이에서 풋살 열풍이 분 이유다.

FC풋옵션팀은 지난 2월 16일 대진표를 받아들고 첫 연습을 시작했다. 험로가 예상됐다. 32강 첫 상대는 MBC, 이기더라도 부전승으로 16강에서 시작하는 한겨레와 맞붙어야 했다. 두 매체 모두 전년 대회에 출전한 경험으로 전열을 갖췄다는 점에서 위협적이었다.

공도 풋살화도 유니폼도 갖춰지지 않았지만 FC풋옵션은 맹연습에 돌입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삼삼오오 모여 개인 연습을 하고 훈련을 받는 동시에 타 매체와 친선 경기까지 병행했다.

평소 운동과 담을 쌓고 있던 기자들이 갑자기 격한 풋살을 하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거나 발목이 꺾이는 등 1~2주 병원 신세를 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꽉 끼는 풋살화를 신고도 아픈 줄 모르고 뛰다 양쪽 발톱이 뽑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부상도 FC풋옵션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강승연 기자는 “첫 친선 경기를 치른 이후부터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몸을 풀 때부터 근육이 놀라 제대로 뛰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면서도 “아픈 것보다 전력에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게 더 무서웠다. 이 악물고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연습이 없는 날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경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FC풋옵션팀과 헤럴드경제 구성원들이 함께 응원을 하고 있다.

지난 25일 경기 파주 NFC(국가대표축구트레이닝센터) 실내풋살장에서 열린 제2회 한국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에서 FC풋옵션은 MBC를 상대로 팽팽한 접전을 벌였으나 승부차기 끝에 16강 진출이 무산됐다.

MBC와의 경기 전략은 수비 후 역습을 바탕으로 한 전술과 2-2 공격·수비 시스템에 기반한 무실점 플레이였다. 경기는 전반전 10분과 하프타임 5분, 후반전 10분으로 진행됐다. 전반전에서는 MBC와 헤럴드경제 양팀 모두 수비 대형으로 플레이를 이어갔다. MBC의 킥인에서 FC풋옵션팀은 선수 두명이 벽을 세우는 전술로 맞대응했다.

후반전에서는 MBC의 공격적인 플레이가 이어졌다. 그러나 골레이로(골키퍼) 주소현 선수의 슈퍼세이브와 픽소(수비수) 강승연 선수의 활약으로 상대의 유효 슈팅을 모두 막아냈다.

경기장 내 응원 열기도 뜨거웠다. 오전 8시 첫 경기임에도 사내 축구팀과 부서 동료들이 현장을 찾았다. ‘오전 8시 경기라니 석간에게 럭키비키’, ‘우승은 풋옵션, 제주도는 콜옵션’ 등이 적힌 현수막도 눈길을 끌었다. 최진영 헤럴드미디어그룹 대표이사와 김영상 코리아헤럴드 총괄전무도 응원 함성을 보탰다.

풋옵션의 코치는 송정섭 고등학교 체육교사이자 전 AFC 풋살 선수권대회 국가대표가 맡았다. 그는 약 3개월 간 팀을 이끌며 한국기자협회 여성 풋살대회에서 첫 경기에서 MBC를 상대로 무실점 수비를 달성케 했다. 현역 시절 그는 그가 몸담았던 전주매그풋살클럽의 FK리그 49경기 연속 무패를 이끌며 ‘피보(최전방 공격수)의 전설’로 불렸다.

풋옵션과의 인연은 10년 전 졸업한 제자가 SNS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그는 “졸업한 제자가 10년만에 ‘사내 여자 풋살팀의 코치를 맡아달라’며 연락을 해왔다”라며 “DM(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을 받고는 정말 반가웠고 당연히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코치 제안을 수락했다”라고 말했다.

훈련 시작 당시 팀원들의 기본기는 ‘제로’에 가까웠다. 볼 터치부터 패스까지 공을 다룬 경험은 거의 전무했다. 그는 첫 훈련 당시 팀원들을 두고 “갓 태어난 아기를 보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힘껏 차도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갔고 같은 편 공 알까기도 부지기수였다.

부족한 경험도 불타오르는 의욕 앞에선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볼 터치는 다듬어 지지 않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지만 팀원들 모두 의지가 남달랐다”며 “첫 수업 전 기본 훈련에 대해 글과 영상으로 안내했는데 다들 잘 인지하고 있어서 굉장히 놀랐었다”고 덧붙였다.

송정섭 코치는 “훈련하면서 매 순간 감동했다”라며 “훈련 세션 별로 빠르게 성장하는 팀원들을 볼 때마다 늘 감사했고 한번도 실망하거나 안 좋은 모습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멋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적응을 못한 것이 조금 부족했다”라며 “그래도 첫 경험에서 원했던 플레이와 작전수행이 잘 되었던 것 같아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소현·신주희 기자·사진=임세준 기자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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