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출은 의열단 수장 정채산을 잡기 위한 일본 경무국 소속 친일파 앞잡이다. 경무국 부장 ‘히가시’의 지휘아래 하시모토(엄태구)와 함께 정채산을 잡아야 한다. 시대는 일제 강점기다. 이정출은 자신의 친구 김장옥(박희순)에게 말한다. “독립이 될 것 같냐.”
누군가는 살기 위해 친일을 부여잡았던 시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가기 위해 항일을 선택했던 격랑의 물결이었다. ‘밀정’은 살기 위해 선택을 한 사람들의 얘기다. 친일이 틀리고 항일이 맞다는 이분법적 논리가 ‘밀정’이 말하는 지점은 아니다.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영화는 들어 있을 것이라 느끼고 보면 된다.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이나 주연 배우 송강호 모두 “누가 밀정이고 아니고의 얘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진 선이 맞는지 틀린지는 사실 관객들의 몫일뿐이지만 말이다.
‘암살’ 속 염석진의 모습은 '밀정'의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다. 그는 시작부터 친일과 항일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분명 겉은 친일이다. 하지만 속내는 항일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기회주의자일 뿐인지 모를 정도로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정채산을 잡기 위해 의열단의 꼬리를 잡은 이정출은 의열단 자금책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한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김우진 역시 이정출이 일본 경찰인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신의 정체와 계획을 털어 놓는다. 기묘한 관계다. 정채산이 언급한 ‘반간계’다. 적의 첩자를 역으로 이용해 우리편으로 끌어들인다. 사실 이 지점은 이정출도 마찬가지였다.
김우진 일행이 폭탄을 경성으로 운반하려는 일을 도우면서 결국 그들을 한꺼번에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정출과 김우진 모두 서로에게 반간의 작전을 세운 채 ‘누가 속이는 것이고 누가 속는 것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영화 속 의열단 내 실제 ‘밀정’의 정체가 드러나고 반간의 계책 속에서 흔들리게 되는 이정출의 진심을 의심하는 하시모토의 시선이 집중하는 순간부터 ‘밀정’은 예상 밖 흐름을 탄다. 필연적으로 민족의식을 자극하던 기존 독립운동 소재 영화와 분명히 구분되는 흐름과 소재를 선택했던 ‘밀정’이 역으로 그 흐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극중 이정출은 ‘암살’의 염석진 혹은 ‘신세계’의 이자성처럼 선택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던진다. 앞선 두 캐릭터가 생존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강요를 받는다면 ‘밀정’의 이정출은 보다 내밀함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봤다. 하지만 그의 선택 역시 비슷했다. 그거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조금 다른 감정의 지점이라면 ‘밀정’이 처음부터 한쪽으로 치워버렸던 민족의식과 애국의 마음이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후반 이후 담겨 버리게 됐단 점이다.
‘밀정’은 제목 자체가 주는 이중적 소재의 혼란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그 혼란 속에서 선택의 질문을 관객들이 자신에게 던져볼 기회를 갖고 달려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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