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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가 레이더] 드라마 속 '심쿵' 기준 바뀌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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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갑순이' 속 논란이 된 송재림 김소은의 강제 키스 장면.(사진=SBS 방송 화면 캡처)


[헤럴드경제 문화팀=장영준 기자] '카베동(壁ドン)'이라는 신조어가 한때 유행을 한 적이 있다. '벽'을 의미하는 '가베(壁)'와 단단한 것을 칠 때 나는 소리인 '돈(ドン)'을 합친 조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벽치기'쯤 될까. 일본 만화에서 여자를 벽에 밀치는 박력 넘치는 남자의 행동을 일컫는 말로, 국내 예능에서 적지 않은 패러디가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우리의 대중문화 곳곳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박력 넘치는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자 주인공을 벽으로 밀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더 이상 피할 곳 없어 당황하는 여주인공에게 서서히 다가가 키스까지 한다면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람을 이르는 신조어) 지수는 올라간다. 일명 '벽키스'라 불리는 장면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터프하고 강인한 남자가 매력이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남자가 각광받으면서 드라마에서는 앞서 언급한 강렬한 장면들은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는 '심쿵' 수준을 넘어 여성이라면 '공포'를 느낄법한 장면들이 등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강제로 키스를 하거나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멋대로 들어온다거나 하는 등의 장면들이 로맨스의 탈을 쓰고 드라마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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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함부로 애틋하게' 속 한 장면.(사진=KBS 방송 화면 캡처)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장면들이 제법 멋지게 그려진다. 남자가 여자를 벽으로 밀어부치고 강제로 입을 맞추는 모습은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이 한 순간에 폭발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이는 곧 묘한 설렘을 유발하며 로맨틱하게 그려진다. 술에 취해 혼자 사는 여자의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집 안에 있던 여자는 무서워하기는 커녕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 역시 가슴 아픈 로맨스의 한 단면으로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만약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갑자기 찾아와 강제로 입을 맞춘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또 늦은 밤 집 앞에 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다면 과연 눈물이 나겠는가. 그래서 드라마 속 아름다운 포장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인간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를 미화하는 장면들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는 애인관계에 의한 각종 살인 폭행 사건들은 매년 꾸준히 증가세다. 우리 주변에서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드라마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데이트 폭력을 미화한다면 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드라마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심쿵'의 기준을 바꿔 더 이상 왜곡된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jjuny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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