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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의 영(映)터리] 영화 속 ‘공간’은 살아 숨쉰다
[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인물이 필요하다. 그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필요하다. 그 사건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해결의 과정이 있어야겠다. 여기에 ‘반전’이란 양념이 흩뿌려 진다면 색다른 맛을 낼 수도 또 느낄 수도 있게 된다. 장르 영화 한편이 구성되기 위해서 필요한 이야기의 요소들을 나열해 봤다. 하지만 이 같은 요소들 외에 가장 중요한 부분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공간이다. 공간의 중요성은 전체의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필수요소 중 하나다. ‘제2의 주인공’이 불리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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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 속 한 장면

■ 공간은 살아 있는 생명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의 성격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과 그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의 성격까지 창조해 낸다. 그 안에서 만들어 낸 인물간의 부딪침과 사건이 그려낸 보이지 않는 파열음이 공간의 대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최근 개봉해 논란의 호불호를 일으킨 ‘아수라’가 주목되는 지점도 바로 그것이다. 악의 굴레를 담은 스토리 혹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캐릭터들의 질주 본능이 모든 것은 아니다. 스토리의 개연성과 비약이 심할지라도 이 영화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가상의 도시 ‘안남시’의 숨결이었다.

‘아수라’에선 착한 사람 이른바 선인(善人)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악을 기반으로 삶의 동력을 찾아 움직인다. 그 지점은 ‘안남시’란 공간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믿게 만든다. 영화 시작과 함께 거대한 부감샷으로 비춰지는 ‘안남시’는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을씨년함이 가득하다. ‘새로운 시작 이전에 파괴의 힘이 드리운다’는 명제처럼 ‘안남시’는 호흡기에 의지한 거대한 생명체처럼 그려졌다.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은 그저 ‘안남시’의 몸에 기대 살고 있는 기생충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각자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먹이 사슬의 구조만이 형성돼 있었다.

결론적으로 ‘아수라’ 속 ‘안남시’는 인물들의 전사(前史)와 후사(後史) 모두를 담고 있는 비약이며 생략이고 압축이었고 또 개연성이었다. ‘아수라’가 예상 밖의 흥행 부진을 겪는 지금의 모습에서 ‘안남시’란 공간의 활용도가 조금더 미흡했단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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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의 한 장면

■ 폐쇄성이 보인 극단의 감정


올해 초여름 개봉해 신드롬을 일으키며 680만 관객을 끌어 모은 ‘곡성’은 실제 지명인 곡성에서 출발했을 정도로 공간의 힘을 강력하게 끌고 간 영화로 손꼽힌다. 극한의 감정을 끌어 내는 데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선 스토리 안에 기존 방식과 다른 하나를 더한 핸디캡을 적용시켰다. 바로 막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간의 의심이다.

영화는 외딴 산골 마을에 들어선 외지인이 일으키는 마을 사람들의 감정적 동요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을 그린다.

실제 곡성도 주변 산세가 험하고 막힌 공간이다. 워낙 험한 산세이지만 아름답고 빼어난 경관으로도 유명하다. ‘곡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벌어질 수도 있을 듯한 기괴함에 포커스를 맞췄다. 창작 자체가 ‘거짓’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공간(‘곡성’은 실제 곡성 지역에서 촬영 됐지만 한자로는 실제 곡성 지명과 다르다)을 활용하고 관객들에게 착각을 불러 일으켰단 점에서 공간 활용의 백미로 통한다.

지역적으로 막힌 구조의 마을은 외지와 내부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 내부의 인물들은 그 안에서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르다. 열린 공간에서 이야기는 사람을 옮기면서 휘발성을 갖고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폐쇄적인 구조는 돌고 돌면서 존재하지 않던 ‘살’을 붙이게 된다.

점차 커진 이야기 혹은 루머는 사건을 일으키고 인물간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낸다. 급기야 그 갈등은 존재하지 않던 혹은 존재할지 모르는 ‘거짓’에 생명력을 불어 넣게 된다.

‘곡성’은 인물간의 밀접한 관계와 여러 추측을 쏟아낸 구조가 탁월한 영화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완성시킨 것은 바로 ‘곡성’이란 폐쇄적 공간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분위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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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속 한 장면

■ 좁은 공간 직진의 구조

1000만 영화 ‘부산행’의 힘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힘을 찾아보자면 좁디좁은 KTX 공간에서 펼쳐지는 긴박함이 큰 힘을 발휘했다. 좀비 영화란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좀비 장르를 선보였지만 공간이 주는 익숙함과 답답함이 어쩌면 이 영화에 진짜 숨결을 불어 넣은 숨은 카드였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기차는 여러 영화에서 활용되고 자주 사용돼 왔던 공간이다. 좁은 통로 좌우가 막힌 구조 앞과 뒤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끌고 가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선택의 카드를 좁혀 버렸기에 관객들도 캐릭터에 이입되고 스토리가 끌고 가는 직진에 동참하게 된다.

결국 속도감이 빨라진다. 스토리 자체가 망설여지는 지점을 포기하게 된다. 뒤로 간다면 후퇴한 만큼 다시 스토리가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기차란 공간은 빠르고 간결한 이야기 구조를 필요로 할 때 안성맞춤인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 ‘부산행’의 KTX란 공간이 주는 힘은 익숙함일 것이다. 누구나 이용하고 누구나 발길을 내딛을 수 있는 그 공간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놓인 곳으로 변한다면. 관객은 그 공간의 익숙함에 지배가 되고 또 그 공간의 익숙함이 주는 힘의 압박감에 눌리게 된다.

좁고 익숙한 KTX 통로. 달리는 기차안의 그 공간은 선택의 폭을 좁힌다. 관객들의 몰입을 강제적으로라도 붙잡는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끌어 안을 수 있는 특별하고 간결하며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깔려 있어야 완성될 수 있는 힘이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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