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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비게이션] ‘걷기왕’, 잠시 멈추고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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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영화 ‘걷기왕’의 매력은 예상 밖으로 편안함에 있다. 제작비 규모가 작은 영화들의 경우 필연적으로 표현 방식의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한정된 제작비를 감안해 연출 방향이 은유적 혹은 간접적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작은 영화’들은 재미가 없고 또 지루하고 또 보고 싶지 않은 영화들이 된다.

‘걷기왕’은 말하기 어렵고 또 에둘러 말하고 그래서 눈치만 보면서 앞만 보며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한다. 힘들면 ‘힘들다’ 말하면 된다.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된다. 조금만 쉬었다가 가도 그리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 번쯤 멈춰보라고. 그것이 마침표가 아니라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한 그 지점을 ‘걷기왕’은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또 무겁지만 절대 짓눌리지 않는 심정으로 그려냈다.

강화도 섬마을에 살고 있는 이만복(심은경)은 선천성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빠름에 억행을 강요당하는 삶의 속도가 그에겐 자유로움이고 편안함이다. 빨리 가기 위해 차를 타야 한다. 하지만 만복은 그럴 수 없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만복은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며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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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만복은 집에서 무려 2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서 다닌다. 걷고 걷고 또 걷는 만복의 일상은 누구도 알 수 없던 누구도 쉽게 잊고 지내던 보지 못했던 일상의 모습이었다. 사실 그 안에서 만복은 치열함을 잃고 있었다. 느림의 삶 속에서 만복은 경쟁을 잃어버린 채 도태되고 뒤처지고 있었다.

그런 만복이 경쟁을 선택했다. 학교 육상부 경보 선수가 됐다. 두 발을 동시에 떨어트릴 수 없는 ‘경보’의 규칙은 어쩌면 만복의 삶을 옥죄고 있는 삶의 규칙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만복은 자신이 어떤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지 아직 깨닫기 전이다.

그런 만복을 깨우치는 인물이 바로 수지(박주희)다. 그는 경쟁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죽기 살기로 달렸다. 그래야 무언가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고로 달림의 포기를 강요받게 된다. 결국 수지가 선택한 방법이 경보였다. 달리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는 경보는 어쩌면 수지의 삶을 유지시키는 그의 존재를 증명케 하는 규칙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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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은 두 발을 통해 걷고 또 걸으면서 평생 처음으로 경쟁이란 빠름을 알게 된다. 수지는 뛸 수 없는 현실을 탓하면서도 빠르게 걸어야 하는 ‘경보’를 통해 달림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다. 두 사람이 각각 걷고 또 빠르게 걷고 결국에는 달려야 하는 현실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감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 끝에서 그들은 결국 공통된 하나를 보고 느끼게 겪게 된다. 멈췄을 때의 뒤처짐이 무서웠다고. 만복이도 수지도 멈추지를 못한다. 그저 “무서워서”라고만 말한다. 세상의 규칙에서 세상의 흐름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걷기왕’은 느리게 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빠르게 경쟁하는 사회의 시스템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느리게도 혹은 빠르게도 못하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 문제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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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이 웃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잠시 멈춤이 결코 후진을 말하지는 않는다.

환하게 웃는 만복의 모습에 수지도 웃는다. 그리고 ‘걷기왕’을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다가올 것이다. ‘걷기왕’ 너무도 반갑고 즐거운 웃음이다. 개봉은 오는 20일.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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