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지태는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다. 급격하게 쌀쌀해진 날씨 탓에 심하게 감기가 들었다고 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 ‘거북스러워도 이해바란다’고 말한다. 사실 상업영화로선 꽤 오랜만에 언론과 만나는 유지태다. 감독 데뷔 이후 배우로서 스크린에 오랜만에 서는 그의 얼굴은 가라앉은 목소리와는 분명 대조적이었다.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우선 다행스럽게 언론시사회 후 기자분들의 평이 상당히 좋았고. 또 제가 느꼈던 그 재미를 기자분들 그리고 블라인드 시사회를 통해 본 일반 관객들이 함께 느낀 것 같아요. 너무 좋죠. 특히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중예산 영화의 흥행’이 중요한 시기라고 봐요. 대작 영화를 만드는 구조나 흥행은 많이 겪어봤고 시스템도 구축됐다고 봐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선 ‘스플릿’ 같은 중예산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간담회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전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니 구조가 상당히 탄탄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볼링’? 이랬죠. 볼링을 소재로 한 영화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몇 편 안돼요. 그게 나중에 알았는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스포츠이지만 영화적으로 다이나믹함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볼링을 소재로 한 도박? 더 감이 안왔죠. 그런데 ‘스플릿’은 하나가 더 있더라구요.”
‘스플릿’은 볼링영화이면서 도박을 소재로 한다. 이미 ‘타짜’ ‘신의 한수’와도 같은 걸출한 도박 영화가 존재한다. 관객들에겐 기대감과 동시에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전하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유지태와 연출과 시나리오를 직접 쓴 최국희 감독이 공통적으로 봤던 것이 드러난다. 그것을 인간미라고 해야 할까.
공교롭게도 유지태는 스포츠에 대해선 사실 ‘몸치’라고 한다. 스스로가 ‘몸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이니. 볼링 역시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까지 태어나서 ‘딱 한 번’ 가본 게 전부였다고. 하지만 사전 준비에 관해선 충무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유지태다. 지독히도 연습을 하고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볼링장에서 레슨을 받았다고.
“진짜로 조금 더 하면 저도 프로 도전을 해봐야하나 할 정도로 빠져들었어요. 하하하. 평생 볼링장 딱 한 번 가본 제가 지금은 ‘에버리지’가 180정도는 나와요. 촬영 중간 배우들과 내기를 할 때 최고가 240까지 냈으니깐. 7연속 스트라이크도 해봤어요(웃음). 그때 느끼겠더라구요. 영화 속에서 권해효 선배의 대사 있잖아요. ‘왜 볼링이 사람 미치게 하는지 알아? 다음에 꼭 스트라이크 칠 것 같거든’ 딱 이 말의 의미를 알겠더라구요.”
“도박 영화의 경우 강력한 악역의 존재감이 사실 되게 중요하잖아요. 기자간담회 당시 정성화 형도 ‘내게 이런 역할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하셨고. 그런데 이 영화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분이 성화 형이에요. 그리고 개그맨 출신이라고 하지만 이미 뮤지컬 무대에선 초특급 스타이구요. 연기? 그 형한테 연기력을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죠(웃음). 사실 전 성화형이 먼저 캐스팅됐단 말 듣고 이 영화 안하려 했어요. 하하하. 그 멋진 ‘레미제라블’이 악역이라고? 내 환상이 깨지는 게 너무 싫어서 거절하려고 했다니까요(웃음). 물론 농담인거 아시죠. 하하하.”
그가 ‘스플릿’로 배우로 나선 것도 분명 오랜만이다. 하지만 그는 그 동안 드라마로 대중들과 소통도 했다. 감독으로도 선을 보였다. 그럼에도 꽤 오랫동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느낌이 강하다. 정확하게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4년부터 2년 간 스크린과 이별을 했었다. 연출 차기작이라고 해야할까.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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