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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있수다] ‘혼술남녀’부터 ‘인생술집’까지...술 권하는 TV, 만취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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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서유기3 캡처)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이게 무슨 방송이야. 살다 살다 이런 방송을...”

25년차 방송인 강호동이 내뱉은 말이다. 지난달 15일 방송된 tvN ‘신서유기3’에서 제작진은 “고량주 한 병을 비우라”는 미션을 멤버들에게 던진다. 강호동은 “방송을 20년 했는데 적응이 안 된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수근은 “마셔라 마셔라...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라며 술자리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운다. 이는 그간 방송에서는 금기시되던 술이 친숙하게 등장하는 현 방송가의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브라운관을 휘젓고 있는 ‘술방’(술 먹는 방송)의 물꼬를 튼 건 tvN이다. 지난해 10월 종영한 ‘혼술남녀’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드라마의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인 하석진은 매번 늦은 밤 시청자들의 혼술 욕구를 자극했다. ‘혼술남녀’의 바통을 이어받은 프로그램은 ‘인생술집’이었다. 이 역시 tvN에서 방송되고 있다. 술을 매개로 스타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SBS의 모바일 콘텐츠 제작소인 모비딕에서는 예능 ‘3차 가는 길’로 술집을 배경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스타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또 모바일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이슬라이브’는 가수들이 취중 노래를 선보이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술방의 등장은 비단 케이블·모바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KBS2의 여행 프로그램인 ‘배틀트립’은 최근 세계의 술 문화 체험기를 다루면서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실었다. 또 MBC ‘나혼자 산다’에서는 박정현과 박나래 등이 각자의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술 마시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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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혼술남녀, 인생술집, 배틀트립, 나혼자산다 캡처)


■ 트렌드 반영한 술방, 시청자 매료시킨 이유


‘인생술집’의 연출을 맡은 오원택PD는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를 설명하면서 “술을 일종의 식도락처럼 즐기는 최근 문화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혼술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에 발맞춰 방송 역시 다양한 술 문화를 소개했고 점차 이를 방송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의 특성상 최근 음주 문화를 방송에 적용한 것이다.

또 관찰예능이 대중에게 큰 관심을 끈 것도 술방의 인기를 견인한 이유다. 술방은 날 것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술방의 묘미라 하면 단연 진솔함과 친숙함인데 실제로 술을 마신 스타들은 평소 방송에서 보여준 꾸며진 모습이 아닌 다소 풀어진 모습으로 대중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타 예능에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두서없는 말솜씨도 술 앞에서는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주정에 가까운 이야기도 술이 놓여있으면 웃음의 소재가 된다. 심지어 방송사고에 가까울 정도로 취한 모습도 말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 관련 게시판에는 “연예인이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선하다” “술 한 잔에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다를 게 없다” “힘든 건 연예인이나 우리나 똑같다” “취한 모습도 예쁘다”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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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차가는길, 이슬라이브 캡처)


■ 모방심리 자극하는 술방, 이대로 좋은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TV에서 술 문화의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것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 위험한 발상이다. 더구나 음주가 대체로 관용적인 우리 사회에서 술방은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자극할 여지가 다분하다.

이를 제재할 장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음주행위를 미화하는 TV 영상물을 엄격히 제한하고 태국에서조차도 TV의 음주장면 방영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규제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우 허술하다.

케이블채널이나 모바일 방송은 음주 장면과 관련된 별다른 규제가 없다. 방송심의 규정에도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음주를 조장하거나 미화한다고 판단될 때는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음주 장면을 묘사하는 것 자체에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인생술집’은 채널 자체 심의를 거쳐 내용에 따라 15~19세 관람가로 방송된다. 모바일방송인 ‘3차 가는 길’과 ‘이슬라이브’ 등은 시청 제한이 없다.

TV 속의 음주는 어쩌면 술 권하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술을 매개체로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격식을 내려놓고 솔직한 모습이 강조되는 것은 실제 우리의 음주문화와 매우 닮아 있다. 방송이 건전한 음주문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음주문화를 청소년들이 접하기 쉬운 TV나 모바일 등으로 내보내는 것에 있어서 엄격한 제재는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청소년들의 충동적인 사건들이 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술 권하는 TV’가 돼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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