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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다영의 읽다가]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건…

  • 2017-09-28 11:02|문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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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밤의 피크닉'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대학시절, 붙어 다니다시피 한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 술 한잔을 요청해왔다. 남자친구 얘기거나, 진로 얘기겠거니 싶어 나간 자리에서 그녀는 참 괴롭고 힘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나한테 배다른 오빠가 있어. 언니도 있대.”
무슨 소린가 싶어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빠는 어릴 때 잠깐 같이 살기도 했거든. 나한테는 언니 하나뿐이라서 어린 마음에 좋기도 했어. 고작 두 달이었나? 그쯤 살았는데 같이 학교도 다녔다. 애들이 ‘너 오빠 없었잖아’ 하고, 선생님은 속없이 애들 있는데서 ‘오빠가 있다며?’라는데 부끄러우면서도 싫지는 않더라. 이상하지, 핏줄이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어쨌든 그 오빠는 삐딱하게 자꾸 나쁜 짓만 해서 아빠가 되돌려 보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아빠 휴대전화에서 그 이름을 본 거야. 이상해,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도 내색 안하고 자식을 만나는가 본데 나도 만나보고 싶더라. 이게 정상적인 거니?”
정상적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답 외에 어떤 말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겠는가. 하지만 그 답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정상적이지 않아. 나는 엄마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다 들었거든. 나도 여자고 남자도 사귀어봤는데 그 마음 모르겠냐. 내가 느끼는 것보다 몇 곱절 더한 고통을 겪었을 텐데. 아빠는 타고난 바람둥이였대.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냥 당당하게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대. 그런 와중에 생긴 혼외자식이 반갑기를 하겠어, 쳐다보고 싶기를 하겠어. 이름만 들어도 소름끼쳐 하시는데. 그런데 내가 만나면 그건 배신이잖아. 난 엄마 딸이고, 같은 여잔데 그냥 내 호기심에, 어릴 적 추억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쁜 거잖아.”

그날 그 자리는 그저 들어주고, 웃을 때 함께 웃고 한숨을 쉴 때 지켜봐주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녀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이었다. 그녀에게서 두 주인공이 교차로 오버랩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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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밤의 피크닉’은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걷는 10대의 끝에 선 고교생들이 밤을 새워 80km를 걷는 고교생활의 마지막 대이벤트 ‘야간보행제’를 치르는 이야기다. 저명한 추리작가이기도 한 온다 리쿠는 노스텔지어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그 수식어답게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을 통해 독자의 추억을 일깨우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묘하게 팽팽한 긴장감과 수수께끼를 담아낸다.

마치 졸업여행과 같은 고교시절 마지막 이벤트 보행제에 참가한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각자 가장 친한 친구를 길동무 삼아 80km를 걸어간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철저히 서로를 외면하는 데 이 때문에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학내에 파다하게 되고 도오루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사실 이복남매로 이혼한 다카코의 어머니가 도오루 아버지와 잠시 바람피워 낳은 자식이 다카코였다. 이 때문에 서로의 관계를 아는 두 사람은 항상 서로를 피해 다녔고, 도오루는 항상 적대감에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다카코를 바라봤다. 죽을 때까지 마주치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 한 반이 되어버린 두 사람. 힘겨운 보행제 날 밤, 다카코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행제는 끝나 가고, 다카코는 밤 12시가 넘기 전에 도오루에게 한 마디라도 먼저 건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다가간다.

잔잔한 이야기지만 온다 리쿠는 힘 있는 스토리텔링과 치밀하고 섬세한 인물묘사로 독자가 도오루, 다카코의 심적 상태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또 고교시절의 추억과 세상 전부인 것만 같았던 작았던 마음,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까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끊어 읽기는 좀 아쉬운 작품이다. 넉넉한 시간에 차분하게 향수와 추억과 글자 위를 걷는 느낌을 만끽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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