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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정인선 “한계는 깨지라고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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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한윤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정인선(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LA VIE EST AILLEURS.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의 불어로, 배우 정인선이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둔 문구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겁이 없어져요.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잘 안 되면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절망할 일이 없어지는 거죠”

아역으로 출발해 23년째 배우로 사는 정인선이 삶의 영역을 넓히는 방식이다. 지난달 종영한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도 정인선에게는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미니시리즈 주연도, 싱글 맘 캐릭터도, 코미디 장르도 처음이었기 때문. 그러나 주저하지 않았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수개월 동안 윤아로 살면서 긴 호흡의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나는 데 자신감을 얻었고,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단아한 이미지에서도 벗어났다. 무엇보다 젊은 배우들과 열정의 경합을 벌이며 초심도 다잡았다. 이제 정인선의 바람은 ‘으라차차 와이키키’로 충전한 에너지의 열기가 가시기 전에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이미,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 드라마 종영 후 인터뷰 일정으로 바쁘게 보냈다고?
“4월 25일이 생일이었는데, 그 날 인터뷰가 가장 많았어요(웃음) 기대 이상의 큰 사랑을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전에 걱정이 많았거든요. 우리 배우들의 조합도, 월요일 밤 11시 편성도, 코미디라는 장르도 나를 비롯해 드라마 팀 전체에게는 도전이자 모험이었죠. 다들 ‘모 아니면 도’라고 했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고 감개무량합니다”

▲ 지난해 KBS2 ‘맨몸의 소방관’ 종영 인터뷰에서 “차기작에서는 내 모습이 3초만 나올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그랬죠. 내가 TV에 오래 나오면 시청자들이 질려 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다행인지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촬영하는 동안엔 이런 걱정에 깊이 빠지지 않았어요. 그것 말고도 헤쳐나가야 할 게 많아서요(웃음) 장르 특유의 빠른 템포를 익히고 배우들의 에너지 경합에서 뒤지지 않게끔 나의 피치를 올려야 했습니다. 또 윤아가 ‘민폐 캐릭터’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고 극 중 딸 솔이(한여름)와 진솔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도 해야 했어요. 촬영장에 가면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계획한 대로 연기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니 오히려 정신없는 모습 자체가 윤아 같더라고요. 큰 수확이었어요. 연기를 수행하지 않고, 그 순간의 ‘정인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요. 그 덕분에 나의 한계를 한꺼풀 벗어던진 것 같아요”

▲ 어떤 한계인가?
“이미지의 한계죠. 차분하고 여린. 이전에는 내 외양과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피해왔어요. 오히려 강하고 어둡고 처절한 인물을 연기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죠. 반면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윤아는 내가 봐도 나랑 잘 어울리는 친구였어요. 체구도 작고 눈꼬리도 처지고. 실제 성격은 정반대이지만요(웃음) 촬영장에서 PD님이 ‘인선아, 너 사랑스러운 거 너무 잘 어울려’라고 해주셨는데, 그게 기억에 남아요. 다른 이미지의 역할로 사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가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구나. 깨달음을 얻었어요. 역시, 한계는 깨라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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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정인선(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연기할 때 경험을 중요시한다고 들었는데, 싱글 맘 캐릭터를 맡기에 앞서 어떻게 준비했나?
“관련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볼수록 부담되더라고요. 내 연기로 인해 이분들이 상처받거나 피해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어요. PD님과 거듭 상의했는데, ‘싱글 맘을 연기하지 말고 윤아를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윤아라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에게 소중한 딸이 있는 것뿐이라면서요. 그 말을 듣고 나니 편하더라고요. 이후에는 우리 엄마나 결혼한 친구들, 여름이 어머님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어요. 이를테면 저는 유선이 막힌 기분을 모르잖아요. 그럼 친구한테 전화해서 낱낱이 물어보고”

▲ 윤아를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
“윤아는 결국 모든 것이 솔이에게로 향해요. 세상에 자신과 솔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죠. 실은 윤아의 인생과 마음을 파악하기까지 고생이 많았어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주로 동구(김정현)의 대사나 반응으로만 윤아의 감정을 유추해야 하는 식이었죠. PD님도 ‘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연기해달라고 주문하셨고요. PD님의 도움을 받아 눈빛이나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윤아가 동구의 마음을 거절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윤아가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내 나름의 표현 방식을 알아봐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 윤아를 연기한 자신에게 점수를 준다면?
“음… 70점인데, 80점이라고 하고 싶어요. 연기하면서 놓친 것도 많고, 조금 더 다르게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많아요. 그래서 70점짜리 연기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통해 많이 느끼고 배운 나 자신이 기특해서 보너스 점수 10점을 더 주고 싶어요(웃음)”

▲ 연기 경력 23년 차인데,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웃음)
“어휴. 아니에요. 23년 차라고 하지만 공백기가 있었잖아요. 중학교 때는 학업에 집중했고, 성인이 되고도 작품 사이의 휴지기가 꽤 있었죠. 여전히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성에 안 차요. 연기에는 만족이 없는 것 같아요. 할수록 어렵고요”

▲ ‘잘 자란 아역’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데.
“작품에 출연하면 ‘얘가 이렇게 컸어?’라는 반응이 따라와요. 관심을 두시니 기분이 좋죠. 그보다 더 좋을 때는 연기로 화제를 모을 때예요. JTBC ‘마녀보감’(2016)이나 ‘맨몸의 소방관’에 출연하고 연기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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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사이를 연기한 정인선과 여름 양 (사진=JTBC)


▲ 아역 출신이기 때문에, 극 중 딸을 연기한 여름 양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묘했죠. 여름이는 나보다 더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한 거잖아요. 초반에는 미안함이 컸어요. 아기를 좋아해서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미흡한 점이 있다 보니 여름이가 많이 울었거든요. 무섭고 겁도 나고, 온갖 감정을 다 느꼈어요. 어느 순간 나도,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방법을 터득했어요. 여름이가 어떻게 해야 웃을지 알게 됐고, 여름이가 피곤해하는 것 같으면 PD님에게 쉬는 시간을 요청하게 됐죠. 여름이가 나를 기다려준 셈이에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 여름 양에게 하고픈 한마디?
“솔이를 여름이가 연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윤아를 못 해냈을 거야. 너여서 다행이고 고마워. 여름아, 네가 크면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웃음) 하지만 나는 꾸준히 너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 선물을 보낼 거란다. 하하. 우리 다시 꼭 만나자”

▲ 나중에 작품에 함께 출연한다면, 그것도 기분이 남다르겠다.
“실은 ‘으라차차 와이키키’ 조명 감독님과 FD님이 KBS2 ‘매직키드 마수리’ 때 막내 스태프들이었어요.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미래에 여름이와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 기분을 느낄 수 있겠죠?”

▲ 글쓰기, 음악, 여행,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경험 열등감’에서 시작된 취미들이에요. 어릴 때부터 배우로 활동하느라 못해본, 못 가져본 것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다 연기로 연결되더라고요. 여행은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고, 사진은 그 모습을 나만의 관점으로 담는 행위죠. 글의 경우, 소설은 아니고 에세이처럼 적는 식이에요. 감정을 파고들어서 그걸 예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짧은 시나리오를 써본 적도 있는데, 이 분야는 함부로 안 하려고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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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은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문장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 마음에 새기고 있는 문구가 있다면?
“우리말은 아닌데 ‘LA VIE EST AILLEURS’요. 몇 년째 메신저 프로필에 적어둔 말이기도 해요.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의 불어예요. 이 문장을 떠올리면 겁이 없어져요.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잘 안 되면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절망할 일이 없어지는 거죠. 정말 좋지 않나요?”

▲ 지금, ‘진짜 삶’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로망 중 하나인데요. 정말 치열하게 살다가 모든 걸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있어요. 낯선 곳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죠. 제일 친한 친구와 생각한 장소는 파리에요. 둘이서 ‘여기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나중에 파리 가서 살자’고 이야기해요. 마음먹으면 여행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긴 한데, 아직 아껴두고 있어요. 숙성시킨다고 해야 하나?(웃음)”

▲ 언젠가 파리에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숙성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될까?
“정인선이 자아를 확인하러 갔나 보다. 이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웃음)”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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