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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리뷰] ‘레슬러’ 작은 얼룩이 작품을 뒤짚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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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흰 티셔츠에 작은 얼룩이 생겼다. 별 것 아니라고 넘기고 싶은데 계속 눈에 거슬린다. 결국 그 옷은 자연스럽게 손이 가지 않게 된다. ‘레슬러’가 그렇다. 좋은 재료와 연기가 갖춰졌음에도 억지 설정 하나가 영화 전체를 흔든다.

‘레슬러’ 속 귀보(유해진)은 전직 레슬링 선수지만 현재는 프로 살림러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유일한 꿈은 현재 촉망받는 레슬러인 아들 성웅(김민재)가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들은 반항을 시작하고 아들의 친구이자 윗집 사는 가영(이성경)은 뜬금없이 고백을 해오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영화 ‘럭키’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유해진표 코미디는 ‘레슬러’에서도 존재한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할 정도로 ‘레슬러’는 유해진의 원맨쇼에 가깝다. ‘레슬러’에서 살림 고수로 등장하는 유해진은 실제 그의 모습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고 매력적이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빨래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귀보의 모습은 ‘삼시세끼’ 속 참바다씨를 보는 듯하다. ‘레슬러’는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시켜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레슬러’는 귀보라는 소시민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귀보를 곁에서 위로해주는 사람은 윗집부부고 귀보의 친구는 성소수자도 있고 갓 이혼한 남성도 있다. 다양한 인생사들이 곳곳에 숨어있어 소박한 웃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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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문희, 유해진, 김민재로 이어지는 3대의 가족 이야기는 친근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머니는 손자 성웅보단 홀로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 귀보가 걱정이고 귀보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지겨워하지만 자신도 성웅에게 잔소리를 쏟아낸다. 현실 모자, 부자 케미가 자연스럽고 괜히 찡하다. 나문희는 말할 것도 없고 처음 스크린에 데뷔하는 김민재는 실제로 직접 레슬링 기술을 소화하고 질투와 혼란에 빠진 성웅을 잘 표현하며 앞으로를 기대케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영의 짝사랑 설정이다. 가영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친구의 아버지인 귀보를 좋아한다. 친구인 성웅에게 “내가 네 엄마가 돼줄게”라고 말하는 황당한 고백은 성웅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당황스럽게 만든다. 가영은 성웅을 설득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성웅은 물론 관객들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그러곤 영화는 가영을 엉뚱한 아이로만 포장한다.

가영의 고백으로 성웅은 본격적인 반항을 시작하고 두 부자의 관계는 틀어진다. 가영은 두 부자의 갈등을 만드는 도구로 이용된 셈인데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마저도 친절하지 않다. 귀보와 가까워지기 위해 가영은 레슬링을 배우러 나서지만 운동복만 입었을 뿐이다. 도장의 남자 운동선수들은 가영의 몸매를 보는데 정신이 없고 카메라도 그 시선을 따라간다. 이런 유머코드라면 진짜 웃음이 터질 리 없다. 캐릭터도 문제지만 이성경의 연기도 ‘역도요정 김복주’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영이 갈등을 유발하는 건 분명하나 두 부자 사이에서 존재감이 가려졌다. 오히려 귀보의 맞선 상대로 등장하는 황우슬혜가 돋보인다.

5월 가정의 달 보기 좋은 소재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좋은 재료를 많이 갖추고 있지만 엉뚱한 설정 덕분에 영화는 길을 잃었다. 후반부 진짜 삶을 찾게 되는 귀보의 변화가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오는 9일 개봉.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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