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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연애 시대] ③“고스펙 미남미녀 로맨스”… 미디어의 ‘연애전시’
지난해 출간된 ‘연애정경’(박소정 저)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연애가 하나의 전시 이벤트가 됐다고 말한다. 자기 PR 시대에 얼마나 멋진 연애를 즐기고 있는지 역시 곧 나를 증명하는 하나의 스펙이 된다는 것. 이를 위해 상대의 조건을 따지고, 더 나아가 나의 연애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원하는 조건의 이성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데이팅앱이 성행하고 비연예인의 연애담을 그리는 관찰 예능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한편 밝은 이면에는 그늘이 지게 마련이다. 조건을 중요시 여기는 연애의 경향이 미디어의 유행과 맞물리면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연애 전시 시대’의 명과 암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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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방송가도 커플 매칭에 열을 올리며 '전시 연애'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사실 ‘연애’는 방송가에서 꾸준히 사랑받은 예능 소재 중 하나다. 대표작으로 MBC ‘우리 결혼했어요’(2012~2017) SBS ‘연애편지’(2003~2007) KBS2 ‘장미의 전쟁’(2002~2003) 등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현재의 연애 예능 트렌드와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바로 출연자의 성격이다. 과거 히트작들은 전부 연예인이 주인공인 반면, 최근에는 비연예인의 출연이 주를 이룬다.

이를 두고 박소정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보조연구원은 자신의 저서인 ‘연애정경’(스체리어스)에서 “연예인의 짝짓기는 시청자의 연애와 다소 동떨어진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중 2013년 JTBC ‘마녀사냥’부터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연애를 상담하고 코칭받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여기서 로맨스의 주체는 시청자, 바로 우리였다. 시청자나 방청객은 수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연애 일대기를 고백했다. 자신의 연애를 자랑하기 위해, 또는 더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TV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애 전시’라는 표현을 썼다. 자기계발주의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연애 역시 개인의 스펙이자 자기 PR의 도구로써 전시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를 인용해 “비연예인들이 대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연애담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사적 자아(private self)’를 ‘공적 수행(public performance)’으로 전환시키는 행위”라며 “이때 연애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제시하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나 연애를 코칭해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연애를 보여주고 싶어 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했다.

■ 대리만족의 효과, 세태 반영 vs '조건만' 경향 조장

2015년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연애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74.5%가 ‘TV에서 행복한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면 설렌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TV에서 연애하는 장면을 보면 괜히 더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68.5%)는 의견도 많았다.

올해 상반기 방송한 채널A ‘하트시그널2’이 이같은 ‘대리만족’의 효과를 제대로 누렸다. 비연예인 8명의 ‘시그널 하우스’ 합숙기를 그리는 ‘하트시그널2’는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출연진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관찰 예능이다. 연예인이 아닌 출연자들의 이야기, 더욱이 연애 직전의 간질간질한 ‘썸’의 과정은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방영 당시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하는 TV화제성 비드라마 부문에서 9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트시그널2’이 큰 사랑을 받은 데는 미남미녀로 이뤄진 출연자 라인업도 한 몫을 했다. 일단 외모부터 남달랐다. 남녀 전원이 연예인 못잖게 출중한 얼굴과 몸매를 자랑했다. 빼어난 스펙도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남자 출연자들이 한의사부터 CEO·셰프·예비 사무관 등 전문직 종사자로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는 연애에 있어서 조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태를 반영하는 한편, 동시에 이 같은 경향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르기도 했다.

이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새롭게 등장한 연애 예능이 tvN ‘선다방’이다. 최근 ‘선다방-가을 겨울 편’으로 새 시즌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비연예인 남녀의 맞선을 주선한다. 사전에 받은 신청서를 바탕으로 제작진이 연애관이나 취향이 맞는 인물들을 짝 지어주는 식이다. 연출을 맡은 최성윤 PD는 “‘하트 시그널’ 류의 연애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주로 선남선녀와 고스펙자들이 나온다. 나 역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은 왜 생기지 않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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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선다방')



최 PD는 이어 “‘선다방’의 가장 큰 차별점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이 나온다는 점”이라고 꼽았다. “방송 활동을 지망하거나 (쇼핑몰) 홍보 목적으로 출연하고자 하는 이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PD는 또 “맞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보통 소개팅과 맞선 이후에 우리도 ‘어땠어?’ ‘괜찮았어?’라는 정도로만 묻지 않나. 출연자들이 그마저도 대답이 어렵다고 하면 캐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런 한편 ‘현실적’인 콘셉트를 내세운 비연예인 연애 예능이 주의할 점도 있다. 바로 출연자의 보호다.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는 촬영 환경에 익숙지 않을 터. 이로 인해 느낄 스트레스를 헤아려야 한다. 또 출연자가 이른바 ‘악마의 편집’ 등으로 인해 악플러들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실제로 ‘하트시그널2’는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남녀가 최종 커플로 성사되지 않자 논란이 일었다. ‘하트시그널2’ 시청자 게시판은 물론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성토글이 줄지었고, 심지어 출연자 개인 SNS에 악성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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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 '하트시그널2')



그런가 하면 2014년에는 SBS 연애 예능 리얼리티 ‘짝’의 출연자가 녹화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충격을 안긴 바. 한참 인기를 끌었던 ‘짝’은 결국 다소 불명예스러운 폐지를 맞게 됐다.

이에 ‘짝’ 사태 이후 SBS가 4년 만에 선보인 연애 리얼리티 ‘로맨스 패키지’의 안범진 CP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해도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해 출연자들이 느끼는 데미지가 컸다. 압박감도 심했을 것이다. 그 때보다 지금은 출연자들의 정서가 많이 유연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제작진이 더욱 더 신경써서 모니터링을 했다. 인터뷰를 하는 저녁마다 출연자들의 심리 상태나 감정의 흔들림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고, 만약 문제가 느껴지면 녹화를 중단해서라도 그 분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애담을 다룬 예능들은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CJ ENM의 적극적인 공세가 두드러진다. tvN이 ‘선다방-가을 겨울 편’에 앞서 내보낸 ‘한쌍’도 비연예인 남녀가 선보는 모습을 그 부모들이 지켜보는 포맷으로 색다른 시도를 꾀했다. 디지털 채널인 스튜디오 온스타일은 목소리 소개팅 프로그램 ‘다이얼로그’를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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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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