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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짱 검객' 서희주, 뜨자 마자 은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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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검객' 서희주는 인천 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검술,창술 전능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한국 우슈 여자선수의 아시안게임 첫 메달이다. .


한국 우슈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까지 대중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 우슈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인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슈라는 스포츠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외면 받던 한국 우슈가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내며 조금이나마 관심을 받게 됐다. 첫 금메달의 주인공 이하성은 집중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과거 SBS TV의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했던 이력이 밝혀져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이하성 못지않게 관심을 받는 우슈 선수가 한 명 더 생겼다. 바로 ‘얼짱 검객’ 서희주(21)다. 서희주는 인천 아시안게임 우슈 여자 검술·창술전능에서 한국 여자 최초로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빼어난 미모 덕분에 또 한 명의 얼짱선수가 된 것이다. MBC TV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고,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서희주는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꽃다운 나이 21세지만 여자 우슈선수는 실업팀이 없는 관계로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다. 내년에 있을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려고 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슈만 바라보고 살아와서 아직 은퇴 후 진로에 대해 정하지 못했다는 서희주. 그런 그녀를 3일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작은 까페에서 만났다.

Q.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얼짱 검객’이란 별명을 얻더니, TV에 출연하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아시안게임 및 방송 출연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는가?

-아시안게임 전후로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단지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에서 메달을 따다 보니까 지인 분들이 나를 조금 더 멋있게 봐주시는 것 같다. 그 전에는 지인들도 내가 우슈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져주지는 않았는데, 아시안게임 이후 관심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라디오 스타’ 방송이 나간 이후에는 모르는 분들도 많이 알아봐주셔서 신기하고 좋다.

Q. 지난해에 있었던 세계우슈선수권대회와 동아시아대회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었는데,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메달리스트가 됐다.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었는가?

-솔직히 이번에는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우슈를 시작할 때부터 아시안게임만 바라보고 운동을 했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였고, 지난 광저우 대회 때를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 때 성적이 좋지 못해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항상 내가 메달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운동을 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Q. 아시안게임 때 검술에서 4위를 차지한 후, 창술에서 역전을 했다. 창술에서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검술 경기에 들어갈 때는 정말 많이 긴장을 했다. 그런데 검술을 치르고 나니까 긴장도 풀렸고, 창술에 자신이 있어서 충분히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술에서 3위 선수와의 점수차도 불과 0.01점이었기에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Q. 아시안게임 직전 대회까지 매번 긴장한 탓에 제 기량을 발휘 못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오히려 부담이 더 됐을 것 같은데, 긴장을 안 하게 된 비결이라도 있는가?

-부담은 되지는 않았고, 대신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국내에서 그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경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응원을 받으면서 경기에 임하다 보니 굉장히 흥분되고 신기했다. 긴장을 안 하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

Q. 아시안게임 우슈 투로 종목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 메달리스트가 됐다. 자부심이 생겼을 것 같은데?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냥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는데, 내가 여자 최초라고 하니까 괜히 더 기분이 좋았다. ‘최초’라는 단어가 나한테만 붙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연히 기분이 좋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펑펑 울었던 장면이 눈앞에 선하다. 어떤 기분이었나?

-처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드디어 내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기 때문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다가 문뜩 힘들었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옆에서 힘이 되어준 가족과 지인들이 생각났다. 많은 감정들이 한 번에 느껴져서 울컥한 것이다.

Q.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훈련하느라 굉장히 바빴을 것이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선수가 아닌 학생(한체대 14학번)으로서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

-우슈를 시작한 이래로 항상 훈련의 연속이었다. 한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되고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매우 행복하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도 떨기도 하고, 같이 놀 수 있어서 압박감도 전혀 없다. 내 나이 또래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나에겐 매우 새롭고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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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슈를 시작하게 된 서희주는 우슈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자신을 괴롭혔다고 밝혔다.


Q.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라는 목표를 이뤘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아시안게임 메달이 어렸을 때부터 목표였고, 그렇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면 곧바로 은퇴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보니까 점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내년에 있을 세계선수권 금메달이다. 12월에 학기가 끝나게 되면 다시 광주에 내려가서 대회 준비를 할 생각이다. 아마 세계선수권이 내 우슈인생의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다. 2017년에는 우슈가 유니버시아드대회에도 들어가게 되는데 부모님은 그 대회까지 나가라고 하신다. 그건 조금 무리일 것 같은데, 고민은 해봐야겠다.

Q. 우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아버지가 우슈 체육관 관장님이셨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체육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아버지가 처음에 우슈를 해보자고 하셨을 때에는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재밌고 멋있어 보여서 결국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우슈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선수가 될 생각이었다. 우슈라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드물고 동작들이 멋있어서 그런지 친구들이 나를 멋있게 봤다. 그래서 더 멋있어 보이려고 잘하고 싶었다.

Q. 우슈는 크게 2가지, 표현종목인 투로와 격투종목인 산타로 나뉜다. 이 중에서 투로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투로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지금도 체격이 큰 편은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는 너무 왜소했다. 그래서 격투종목인 산타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투로의 도약기술이 워낙 화려하고 재밌어 보였다. 그 점에서 투로에 대한 매력이 확 느껴졌다.

Q. 2012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선수생활 최대 위기를 겪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상황이었는가?

-당시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기 위해 훈련 중이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2주 앞둔 상태였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 도약하는 순간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되고 말았다. 재활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하마터면 선수생활이 그 순간에 끝날 수도 있었다.

Q. 비인기 종목의 모든 선수들이 힘들지만 여자 선수들의 경우는 특히 더 하다. 우슈의 경우 전국체전에서 조차 여자부 경기가 없다. 실업팀도 없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어떤가?

-우선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이 제일 힘들다. 실업팀이 없다 보니 돈벌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국제대회를 앞둔 상태에서는 선수촌에 들어가기 때문에 괜찮지만 국제대회가 없을 때는 개인적으로 훈련을 해야 한다. 전지훈련을 갈 때에도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우슈에 대한 관심도가 적어서 그런지 훈련을 위한 공문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여자 선수의 경우에는 은퇴 시점도 빨라서 진로에 대한 고민도 커진다.

사람들의 무관심도 힘든 부분 중 하나다. 우슈라는 종목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한국이 우슈에서 메달을 딸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무관심하니까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무관심 만큼 힘든 것도 없다.

Q. 뒤늦게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이 늦어진 이유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비로 인해 1년 내내 훈련만 했고, 그러다 보니 출석을 거의 하지 못해 유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는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1년 내내 재활에 치중했기 때문에 대회실적이 없어 대학에 입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늦게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나와 동갑이거나 어린 사람들이 선배였기 때문에 그 점이 다소 힘들었다. 그런데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동기로 지내다 보니 나도 더 어려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 나이가 많아서 선배들이 더 잘해주는 것도 있다. 하지만 졸업이 늦어지고 그만큼 진로가 늦게 결정되는 것은 아쉽다.

Q. 얼마 전에 경기지도자 2급을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수 은퇴 후 진로는 어느 쪽인가?

-어렸을 때부터 오직 인천 아시안게임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목표도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딱히 진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것이 없다. 아무래도 지도자 쪽으로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 차차 생각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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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주에게 2014년은 남다르다. 뒤늦게 대학에도 들어가고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인천에서 셀카로 담은 서희주의 모습.


Q. 서희주에게 2014년은 잊지 못할 한해였을 것 같다. 서희주에게 2014년은 어떤 해인가?


-내 우슈 인생에서 가장 환상적인 한 해였다. 어렸을 때부터 단 한길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런데 그 꿈을 드디어 2014년에 이뤘다. 그동안 힘들고 고생했던 것들을 올 한해 모두 보상받는 것 같다. 정말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서희주의 뒤를 이어 아시안게임 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후배들이 우슈를 시작한 계기가 나처럼 우슈가 멋있고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훈련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이 힘들고 지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처음 우슈를 왜 시작했는가를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힘들더라도 즐겁게 하면 언젠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 생활한다는 것이 많이 힘들 텐데, 후배들에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전해주고 싶다. [헤럴드스포츠=임재원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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