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그늘집에서]10월 프레지던츠컵 때 방한할 조던 스피스
이미지중앙

조던 스피스에게 선천성 자폐를 앓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됐다. 왜 그가 어린 나이에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이었는지, 왜 결정적인 순간 버디를 잡고도 리액션이 소박했는지, 왜 두려움없이 대담한 골프를 했는지 말이다. 한 순간에 수수께끼가 풀리듯 오해가 사라졌다.

스피스 패밀리의 스토리를 접하면서 십여 년 전 발달장애 딸을 둔 지인과의 통화가 오버랩 됐다. 이 지인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아이처럼 울었다. 당혹스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5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 딸이 드디어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썼어요!”라는 말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 나왔다. 그의 딸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지인의 아내는 딸로 인한 우울증으로 백화점에서 수천만 원어치 쇼핑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와 오랜 시간 교류하면서 느낀 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었다. 어떤 일이든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모든 건 신(神)의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믿음도 강했다. 그리고 신세는 꼭 갚으려고 했다.

스피스는 지난 주 마스터스 위크 때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97년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가 최연소 우승을 거뒀을 때 줬던 감동과는 다른 느낌이다. 우즈가 폭발적인 퍼포먼스의 감동을 줬다면 스피스는 그에 더해 휴머니즘의 감동을 줬다. “엘리의 오빠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살 수 있었다. 자폐 어린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당연시 하는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그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스피스는 지난 주 마스터스 때 고요한 바다와 같았다. 골프사에 남을 각종 기록을 경신하며 눈부신 플레이를 펼쳤지만 자주 웃지 않았고 그렇다고 긴장한 얼굴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승부를 걸어야 할 순간엔 격정적으로 핀을 향해 샷을 날렸다. 스피스의 스타일은 그랬다. 마치 모든 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듯 무심하게 경기했다.

포커 페이스의 스피스가 감정을 드러낸 순간이 있었다. 최종라운드 13번홀(파5)이었다.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낸 그는 중계 캐스터가 “레이업 후 안전하게 3온 작전을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으나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향해 볼을 날렸다. 그리곤 “go, go hard, go!”라고 외쳤다. 볼은 개울을 살짝 넘어 그린에 떨어졌다. 3타차 선두였으나 정면승부를 택했고 2온 2퍼트로 결정적인 버디를 잡았다.

13번홀에서 나온 스피스의 간절한 외침은 여동생 엘리를 위한 기도처럼 들렸다. 오빠가 언제나 우승 트로피를 들고 집에 돌아오길 바라는 여동생은 스피스에겐 승리해야 하는 이유였다. 불행한 삶을 살아 가는 여동생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하고 끝없이 승리해야 했다. 모친 크리스가 " 아들 조던이 엘리와 함께 자라지 않았다면 오늘의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 말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스피스는 지난 해 처녀출전한 마스터스에서 역전패했다. 2타차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섰으나 버바 왓슨에게 덜미를 잡혔다. 부친 션은 "작년의 경험이 올 해 우승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2년 연속 잘 치기 어렵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겐 우승 약속을 지켜야 할 여동생 엘리가 있었다.

스피스는 2012년 PGA투어 Q스쿨에서 떨어진 아픔도 있다. 그 것도 최종 예선이 아닌 지역 예선에서다. 당시 스피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Q스쿨에서 떨어졌어도)나 자신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로 부터 불과 2년 6개월 뒤 스피스는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와 함께 무대 중앙에 섰다. 그리고 가장 기대되는 별이 됐다.

오는 10월 스피스는 미국팀 일원으로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2015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한다. 그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 볼 생각이다. 그가 잘 치든, 못 치든 중요하지 않다. 그가 뿜어 내는 좋은 에너지를 한국의 골프 팬들이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스피스가 발달 장애 딸을 둔 나의 지인과 만나는 장면도 꼭 보고 싶다. 그 지인은 2015 프레지던츠컵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