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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중독의 편파 야구 Just For Twins!] 소사의 완벽투, “두 개로도 충분하다!”

21일 시합 결과 시합 결과 : 한화 이글스 0 -10 LG 트윈스

젊은 투수들이여, 구속을 올려라

현대 야구가 발전하면서 투 피치(two pitch) 투수는 선발이 아니라 불펜에 더 적합하다는 이론이 정착하는 모양새다. 구종이 다양하지 않은 투수는 긴 이닝을 던지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체다. 선발투수는 최소한 타자 당 두, 세 차례의 타석을 맞이하는 탓에 눈에 익은 두 가지 구종만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길어야 두 이닝 정도를 담당하는 불펜 투수와는 다른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야구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고교 시절부터 투수들에게 너무 다양한 변화구를 가르친다는 느낌이다. 고교를 평정했다는 투수들이 프로에서 던지는 것을 보면 140km대 중반을 채 던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팔꿈치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악마와의 악수’라는 평가를 받는 포크볼을 고교시절부터 구사하는 투수들도 있다. 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빨리 실전에서 유용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가장 쌩쌩한 모습을 보여야 할 20대 초반부터 변화구 투수로 변신하는 일도 잦다.

그러나 숨을 조금만 길게 가져보면 다른 결론이 보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구 구속은 20대 중반을 넘어서서 더 빨라지기가 쉽지 않다. 성장이 완료된 이후에는 투구 패턴이 몸에 익어 몸의 근육이 성장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구 폼이 완성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는 공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도 시원스럽게 뿌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당장 실전에서 못 써먹더라도 기본적으로 공을 강하게 채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21일 시합에서 트윈스는 공수주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주루 플레이, 물 흐르는 듯한 수비, 득점권 타율 9위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던 적시타. 게다가 이날 트윈스는 올 시즌 만루 상황에서 남긴 18타수 무안타라는 치욕적인 기록마저 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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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 7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의 완벽투로 '몬스터 모드'를 가동한 헨리 소사. 그는 이날 완봉을 노릴만한 페이스를 보였지만 일요일 선발 등판 예정을 감안해 7이닝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하지만 이날 모든 칭찬을 덮어버릴 만한 잠실의 주인공은 트윈스의 선발투수 헨리 소사였다.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의 만점 투구를 선보인 그는 이날 모두 98개의 공을 던졌다. 이 중 직구(59개)와 슬라이더(30개)의 비중이 90%를 넘겼다. 두 구종 외에 던진 공은 고작 9개(커브 5개, 포크볼 4개). 사실상 직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만으로 마운드를 지배한 것이다.

소사의 이날 투구는 마치 “중요한 것은 구종이 아니라 구위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140km대 중후반을 오가던 직구는 7회 들어 154km를 찍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불을 뿜었다. 웬만한 투수 직구 구속과 맞먹는 최고구속 141km의 고속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매섭게 찔렀다.

직구와 포크볼, 단 두개의 구종으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던 노모 히데오는 “투 피치로는 언젠가 한계가 오지 않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두 개로도 충분하다.”는 짧은 답으로 자신감을 표시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공의 위력이다. 공이 위력적이면 ‘두 개로도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위력적인 공을 가진 투수는 제구가 흩어져도 시간을 두고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이 위력적이지 않은 투수는 아무리 시간을 두어도 구속을 높이기 어렵다. 소사는 벌써 한국에서 4년째를 맞는 투수다. 2012~2013년 기아 시절만 해도 소사는 공은 빠르지만 제구가 너무 들쭉날쭉해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투수였다. 하지만 나이 서른을 맞은 올해 소사는 트윈스의 투수 중 가장 안정감 있는 투구를 선보이는 중이다. 등판한 다섯 경기 중 퀄리티 스타트만 네 경기다. 소화한 이닝도 33이닝으로 리그 1위다. 구속은 원래 빨랐는데, 한국에서 시즌을 거치면서 제구를 잡아나간 것이다.

파이어 볼러가 제구력 위주 투수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위력적인 직구가 없어도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으로 얼마든지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노력했는데도 구속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노력으로 구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젊은 시기부터 다양한 변화구에 목을 매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묻는 것이다. 이날 소사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공만 위력적이면 “두 개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의 한 장면 - 정성훈의 도전 정신

올 시즌 트윈스의 주루사가 부쩍 많아지면서 뒷목 잡고 쓰러지는 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즉 성공과 실패 확률이 반반 정도만 되면 한 베이스를 더 훔치려는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는 쪽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그 도전이 실패했다고 비난하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에도 박수를 치는 관용이 필요하다. 복지부동 식으로 “안 뛰면 욕먹을 일 없다.”는 안이한 자세보다는 “한 번 해보겠다.”는 용맹스러운 패기가 팀에 더 활력이 된다고 믿는다.

이날 시합의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5회말 2사 만루 때 이진영의 타석일 것이다. 스리투 풀 카운트에서 이진영은 바깥쪽 패스트볼을 잘 골라 밀어내기를 얻어냈다. 그런데 이글스의 포수 정범모가 이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스스로 판단한 나머지 공을 1루로 뿌리고 자신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 순간 2루 주자였던 정성훈이 득달같이 홈을 훔쳐 ‘밀어내기 2타점(사실 2타점은 아니지만)’이라는 진기명기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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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헤드 : 5회말 이글스 포수 정범모의 착각을 틈타 홈을 파고 든 정성훈. 정성훈은 이날 3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센스 넘치는 주루 플레이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언론에서는 이 상황의 포커스를 ‘정범모의 믿을 수 없는 본 헤드플레이’에 맞춘다. 하지만 남의 팀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필자는 이 상황에서 과감하게 홈을 훔친 정성훈의 도전 정신에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 세이프가 돼서 그렇지 홈 커버를 들어왔던 유먼이 공을 제대로 낚아챘다면 접전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의 하나 정성훈이 아웃이 됐다면 “또 주루사냐! 그것도 홈에서!”라며 트윈스의 팬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성훈은 주저 없이 홈을 훔쳤고 그 과감한 주루플레이로 4대 0을 만들어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결과가 좋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플레이가 많이 나와야 한다. 1회에 횡사할 뻔 했지만 상대 선발투수 유먼의 투구 폼을 읽고 세트포지션 상황에서 2루를 두 번이나 훔친 오지환의 주루도 그런 도전 정신의 일환으로 보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날 승리가 기뻤던 이유는 열 가지가 넘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트윈스의 선수들이 여전히 패기 넘치는 도전 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수은중독 :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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