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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원에서 만난 사람]골프 대디로 17년..야구인 조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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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2라운드가 열린 28일 막내 딸 윤지의 경기를 관전중인 조창수 감독.<정선=채승훈 기자>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2라운드가 열린 28일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컨트리클럽. 갤러리 틈에서 낯 익은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덕아웃이 더 잘 어울릴 야구인 조창수(66) 씨였다. 조 감독과의 인연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 야구단의 담당 기자와 수석 코치로 처음 만났다.

조 감독은 1967년 경북고 야구의 황금시대를 연 주역이었다. 임신근, 강문길, 이병재 등 호화 멤버들과 함께 황금사자기와 청룡기, 대통령배 등 전국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좌익수로 뛴 조 감독은 톱타자나 3번 타자로 활약했다. 고교 졸업후 한일은행에 입단한 조 감독은 아마추어 팀 롯데의 창단 멤버로 이적한 뒤 78년 현역생활을 끝내고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곧바로 광주일고의 감독으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다. 조 감독이 광주일고를 맡았을 때 선동열은 1학년이었다. 조 감독은 대통령배를 제패하며 지도자로도 성공했다. 이후 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의 타격 코치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롯데와 MBC 청룡, 삼성을 거쳐 97년 말 삼성 감독 대행을 끝으로 야구계를 떠났다.

조 감독이 정든 유니폼을 벗은 이유는 두 딸의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알려진 대로 조 감독은 큰 딸 윤희(33)와 막내 딸 윤지(24)를 프로골퍼로 키웠다. 스포츠 스타인 부모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 받은 두 딸은 좋은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장타를 날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투어 프로가 됐다. 큰 딸 윤희는 2002년, 9살 터울의 막내 윤지는 2009년 KLPGA투어에 입문했다. 선수로서는 막내 윤지가 더 잘 나가고 있다. 큰 딸 윤희는 고대하던 우승은 거두지 못하고 2012년 은퇴했다. 대신 동생 윤지가 올시즌 아주 잘 나가고 있다. 지난 5월 E1 채리티오픈에서 8개 홀 연속 버디를 잡아 KLPGA 기록집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달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조 감독이 야구인에서 골프 대디로 변신한 지 어언 17년째댜. 가장 힘들었을 때는 IMF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에서 잘 나가던 냉면집을 정리한 게 화근이었다. 금전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한 조 감독은 “그래도 자존심은 있고 답답한 얘기는 하기 싫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스럽게도 인복이 있는 듯 주변의 도움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이 훈련장과 훈련 비용을 지원했고 후원 모임에서 3년간 지원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막내 윤지는 그래서 돈 걱정없이 골프를 시킬 수 있었다. 조 감독은 8년간 문막에 살며 오크밸리 골프장에서 두 딸을 훈련시켰다.

구기 종목 스타들의 경우 자식을 골프 선수로 키운 사람들이 많다. 야구(김용희, 선동열, 김준환)와 축구(고정운), 배구(김호철), 골프(최광수)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 만큼 성공한 선수는 없다. 이에 대한 조 감독의 해석이 일리가 있다.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미인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자식들중 스포츠 스타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외가 스포츠 커플인 조 감독 부부와 탁구스타 안재형-자오즈민 부부다. 안재형 감독의 아들인 안병훈은 지난 5월 유러피언투어 플래그십 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조 감독에게 ‘야구와 골프중 어느 쪽이 더 힘들까’를 물었다. 그는 “골프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종목에는 슬럼프가 있지만 골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야구는 동료들이 있어 슬럼프 탈출에 대한 부담이 덜한 편이다. 죽어있는 공을 살리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말했다. 야구와 골프를 통해 환희를 느낀 순간도 물었다. 조 감독은 “야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68년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의 대통령배 준결승이었다. 그 때 고교야구 사상 처음 10회 말 굿바이 홈런을 때렸다”고 회상했다. 조 감독은 이어 “골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윤희가 98년 맥도널드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송아리-나리 자매를 누르고 우승했을 때다. “아빠, 아들 보다 낫지!”라고 말하던 윤희의 얼굴이 생생하다. 그리고 막내 윤지가 최근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도 너무 좋았다“고 했다.

조 감독은 야구인에서 골프 대디로 변신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를 할 것 이라고 했다. 조 감독은 “난 영원한 야구인이다. 가슴 깊이 새겨진 추억과 옛 기억에 대한 향수도 많다. 다시 태어나도 야구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60대 중반에 접어든 조 감독은 이야기를 마친 뒤 꿈 길을 걷듯 터벅 터벅 막내 딸 윤지의 뒤를 따라 카트 도로를 걸어 내려갔다. [정선=헤럴드스포츠 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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